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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9.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8

15장 6일째 저녁

448.


 “이건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자”라고 마동은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마동은 더 이상 말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거실로 나와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거세게 내리던 비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고요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대기는 멎어 버린 듯했다. 정의할 수 없는 대기는 숨쉬기 어려울 만큼의 열기가 가득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세상을 삼키려고 거세게 내리던 비는 고요해져서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침착하게 내리고 있었다. 멀쩡한 여름밤을 보는 것은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마른번개가 떨어지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그동안 여러 기억의 집적이 굴절되어 찰나를 통해서 지나쳤다.


 지금 감정은 지나친 위화감일까.


 위화감은 찰나로 지나쳤고 외로움이 몰려왔다. 외로움을 느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 순간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최대한 머릿속에 각인하려 했다. 마동은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온 한 구절을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려 먼지조차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렸다. 많은 고대인들이 죽을 수 없는 운명 속에서도 죽음을 맞이했다. 많은 병을 고친 뒤에 스스로 병에 걸려 죽은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렸다. 늘 있는 일처럼 전 세계의 대도시를 파괴하고, 점령하고, 몇십만이나 되는 대군과 기병대를 처참하게 살육한 시저나 알렉산더는 죽지 않을 줄 알았지만 죽음은 그들도 삼켰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태양 밑에서 물로 배를 채우며 밤낮 가리지 않고 사색과 연구를 하다 흙으로 몸을 꽁꽁 칠 한 채 죽어간 고대 철학자를 떠올렸고 원자론에 바탕을 둔 철학사상을 펼치다 죽어간 데모크리토스를 떠올렸다. 철학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는,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생긴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떠올렸다. 그들의 죽음과 지금의 죽음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없다. 죽고 난 후의 세계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토록 머뭇거려 온 수많은 세월들을 생각해 보라. 신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구원의 기회를 주어 왔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 기회를 흘러버렸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당신 자신도 그 일부분인 우주의 본질을, 당신 자신도 그 발산 물의 하나인 우주의 지배자의 본질을, 이제 한정된 시간을 이용하여 밝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다면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당신도 흘러가 버려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거대한 우주와 그 속의 극히 작은 일부분인 나 자신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라. 그리고 당신 자신이 그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자연에 일치하는 당신의 말과 행동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결국 죽음이란 자연적인 현상이며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마동은 자신이 우주의 미미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이제 미미한 존재에서 벗어나 균형을 바로잡을 때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하는 행동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되새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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