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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0.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9

15장 6일째 저녁

459.


 서서히 깨어난 목 없는 사람들의 정념이 느껴졌고 그들의 사념을 향한 소리가 들렸다. 암흑에서 불어오는 검은 바람이 치열하게 몰아쳤고 누린내가 바다의 한 곳에서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마른번개는 떨어지지 않았고 어두운 밤에 보이는 구름은 고장 난 티브이의 컬러처럼 무섭게 자줏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자줏빛 구름은 암흑의 모든 것을 대동하고 정장 차림으로 정중하고 또 정중하게 서두름 없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세상을 덮은 폭풍 속에서 미미한 노아의 방주처럼 마동과 는개가 우산을 쓰고 위태롭게 테트라포드에 서 있었다.


 “나 잠이 너무 와. 서 있을 수도 없을 거야.” 마동이 말하자 그녀가 마동의 머리를 자신의 머리에 대어 주었다.


 “제게 기대서 잠을 청해요. 저도 아마 잠이 올 거 같아요.” 는개는 마동의 허리를 의식처럼 감았다. 멸망이라는 이름 위에 구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덧입혀 놓을 수 있을까. 마동은 미칠 듯한 졸음 속에서 생각했다.


 “아마도.” 는개의 말에 마동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자줏빛 구름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어느새 몰려와있었고 방파제 주위는 누린내가 가득한 해무가 점거해 버렸다. 세계가 끝이 나려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어서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문을 통과하면 소우주가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롭게 적응하면 된다.


 “당신 집에서 아침에 당신이 잠들어 있을 때 당신의 귀에 대고 살며시 말해줬어요. 전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다구요. 당신의 마음은 언제나 닫혀있었어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모든 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 당신의 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사랑하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어요. 제가 그 말을 하니 잠들어있던 당신의 얼굴에 미소가 일더군요. 당신의 얼굴에서 그런 미소가 나오다니.” 는개가 마동의 메마른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그래, 나도 는개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고마워.”


 “고마워요.”


 “사랑해.”


 사랑해요.”


 “정말 나와 같이 있는 것이 괜찮겠어? 무모한 짓인걸.”


 “와이 낫?”라며 는개가 웃었다. 마동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이제 그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말해줄 게 있어요. 저도 감기가 걸린 것 같아요. 그것도 너무 지독한 감기. 나, 이틀 전에 비해서 그림자가 옅어졌어요. 앞으로 죽 당신 곁에 있을래요. 그거 알아요? 세상에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 투성이에요. 무모함이 때로는 앞일을 바꾸기고 해요. 안 될 이유도 없잖아요. 전 늘 실수만 하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이번에도 실수를 한 번 더 하는 것뿐이에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검붉은 구름과 자줏빛 해무는 대기에 무서운 스파크를 뿜어대며 대지를 덮쳐왔고 마동은 그대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이 끝나버렸어.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네. 맞이하네.

 세상의 끝에 다가가면 우리는 모두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끝]     


드디어 끝이 났다.


매일 워드 한 페이지 분량으로 글을 올려 459일의 긴 여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일 년 하고도 석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아프지 않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잠에서 깨면 늘 느끼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나 길게 오게 되었다. 긴 이야기를 적으면서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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