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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3. 2021

런던 팝에서 19

단편 소설


19.


 피아노를 치는 상혁, 드럼을 연주했던 교상, 기타 리프를 끝내주게 연주했던 효상. 그리고 치론. 우리는 내가 입대하기 전에 주왕산으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효상의 삼촌이 몰던 스포티지(1세대)를 빌렸다. 운전면허증도 효상밖에 없었다. 우리는 효상이 운전을 할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효상이 운전대를 잡았고 교상이 조수석에 앉아서 창문 위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뒷좌석에는 치론이가 앉고 내가 중간에 앉고 옆에 상혁이 앉았다. 트렁크에는 텐트와 각종 식료품과 그것들 위에는 효상의 기타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아래위로 움직였다.


 주왕산에 진입을 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우로 바뀌었다. 초행길이고 몹시 위태롭게 산길을 달렸다. 내비게이션도 없었던 시기여서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갔는데 차가 어딘가로 들어 갈수록 걷잡을 수 없는 미궁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도로는 아스팔트를 벗어난 지 오래됐고 흙길의 울퉁불퉁 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길이라고 불리는 건 흙탕물로 위험천만했다.


 처음에 교상이 겁을 내더니 나도 상혁이도 운전을 하던 효상도 이거 큰일이다 싶었다. 우리 이제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반면에 치론이만 느긋했다. 그렇게 보였다. 편안한 표정과 자세였다. 꼭 사고가,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지금의 이 순간을 아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몹시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치론이가 일단, 우리 여기서 밥을 먹자,라고 해서 우리는 그제야 서로 배가 무척 고프다는 걸 알았다. 차를 세웠다. 차를 세웠을 뿐인데 비가 차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가 교상이가 연주하는 드럼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어느 누구도 일어나서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차의 와이퍼를 꺼 버리니 비가 창문에 고스트의 얼굴을 만들어 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속은 살아있는 고래 뱃속 같았다. 차가 지나온 바닥은 돌과 흙길이 그대로 노출이 된 길이라 차의 타이어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나 견뎌낼지가 문제였다.


 치론이가 몸을 뒤로 돌려 짐 꾸러미에서 무엇인가 꺼내서 밖으로 나갔다. 차 위에 비 막이를 설치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스포티지 옆 문 앞에 비를 피할 수 있는 큼지막한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시나, 이거 대단한데. 너 이거 어떻게 할 줄 알았어?" 교상이가 치론이의 가슴을 만졌다. 치론이는 자신의 가슴을 내밀며 “나 이래 봬도 보이스카우트였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오오, 하며 웃었다.


 “그다음에 어떻게 해?"


 에어컨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운전을 한 효상이가 물었다. 우리는 치론이가 지시하는 대로 비막이 안에서 휴대 버너를 설치하고 버너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였다. 버너가 세 대가 있었고 두 군데에서 라면을 끓였고 김치도 넣었다. 나머지 버너에서는 밥을 안쳤다. 치론이는 버너 뚜껑 위에 돌을 올렸다.


 “이 돌은 뭐야?" 내가 물었다.


 “몰라, 보이 스카우트 때 배웠어. 이제 한 번 써먹어 보는 거야”라며 치론이는 웃었다. 치론이의 웃음은 막막하기만 한 상황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웃음 하나로 인해 친구들과 나는 비와 에어컨으로 얼어붙은 몸이 녹은 듯했다. 라면은 그동안 먹어본 라면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푸릅푸릅하며 몇 번의 젓가락질만에 라면은 전부 사라졌다. 시동은 끄지 않고 음악을 틀어놨다. 폭우 때문에 음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운치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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