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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4. 2021

런던 팝에서 20

단편 소설



20.


 “보통 이럴 때 라디오를 들어야 하지 않아?"


 후루룩 하며 국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후루룩 하며 밥을 말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라디오를 들어야 주왕산 안으로 깊게 들어갈지 말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후루룩 하며 국물과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음악 듣자, 지금 좋잖아."


 후루룩.


 “밥 더 넣어, 아니 다 넣어."


 모두 걱정은 물리고 라면 국물에 갓 지은 밥을 그대로 말아서 퍼먹었다. 뜨거워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배가 부르니 폭우고 뭐고 조금은 잊게 되었고 모든 풍경이 약간은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짧았고 라디오를 듣지 않은 우리 자신을 속으로 맹비난했다. 현실은 걱정이라는 거대한 검은 구름을 몰고 왔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까 주왕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치우자. 우리 과에 영덕인가? 영해인가?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 나와 같이 연주를 해서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놈이야. 주왕산을 제외하면 여기 지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지낼만한 곳을 물어보자. 어쩌면 그 녀석 집에서 묵을 수고 있고 말이야. 그 녀석의 고향 이야기를 들으면 꼭 세상에 없는 소설 속 같았거든."


 상혁이가 음대에서 같이 연주한 친구의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괴짜 같은 놈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우리는 지도를 열어서 영덕과 영해를 찾았다. 지도는 금세 비의 침공을 받았다. 우리가 있는 주왕산에서 영덕까지도 꽤 먼 거리였고 영덕과 영해도 먼 거리였다. 영해는 지도상으로 바다와 가까워 보였지만 지도에 속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영덕으로 가서 상혁이 친구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폭우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버너 속에 빗물이 다 들어갔고 우리는 큰 비막이 안에 있었지만 얼굴도 옷도 다 젖었다.


 정리를 하고 차에 오르니 김이 서렸다. 에어컨을 켜고 차를 다시 몰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과 미끄러운 흙과 크고 작은 돌 때문에 자동차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치론이는 재미있어했고 나머지는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동차 안의 멤버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 다녀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치론이는 다른 반이었지만. 그리고 지금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시절보다 재미가 덜 했다. 다행이라면 치론이를 제외하고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치론이도 차 안에서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오래전 언젠가 미술부 혁진이의 학교 앞 자취방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다. 모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에게 잘못을 한 것처럼 담배를 피웠고 기침을 몇 번 크게 했고 가래를 뱉었고 구토를 했고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주인집 아줌마가, 조용히 햇 개새끼들, 맨날 담배나 쳐 피우고! 여자애들 불러 따먹기나 하고! 에이 씨발 놈들! 하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렸다. 우리는 기침을 하면서 킥킥거렸다.


 “며칠 전에 아저씨가 술이 똥이 되어 들어와서 아줌마를 덮쳤는데 구멍을 찾지 못해서 다리 사이에서 허덕거리다 파자마에 오줌을 쌌대."


 혁진이는 멋진 폼으로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더 키득키득거렸다. 고등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야외의 화장실에서는 흡연을 용인했고 학부모 회의에서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장과의 마찰이 있었다. 교장은 때 아니게 아이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두발도 어느 정도 자율화해주었다. 아이들은 교장을 사랑한다는 플래카드를 만들기도 했고 문예부와 방송부는 교장을 찬양하는 문구도 만들어 방송을 했다. 교장은 난생처음 아이들의 칭찬을 듣고 격앙되었도 더불어 아이들이 완전한 두발 자유화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머리 모양에 신경 쓰는 꼴이 보기 싫었던 학부모들과는 더더욱 벌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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