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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2. 2021

런던 팝에서 18

단편 소설


18.


 “담배도 피우나 봐, 술도 마시고 말이야. 아마 남자애들과 돌아가면서 봉크도 했을 거야. 속상해." 하고 치론이가 말하며 포크를 탁 놨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다음 순간 집 안이 침묵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파스타에는 집에 감도는 분위기와는 달리 치론이의 온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잘 알 수 없는 파스타를 냠냠 거리며 먹을 수 있었다.


 “파스타는 많아."


 나는 치론이를 보며 이제 그만이라며 웃었다. 치론이는 “아니야, 더 먹어"라며 웃었다. 꼭 치과에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가 웃음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치론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잘 웃었다. 비교적 재미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치론이는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다, 웃어준 것에 가깝다. 다른 아이들의 말에는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내가 말을 하면 치론이는 늘 그랬다. 고등학교 때 아이들에게 여자, 가시나, 이 년이, 수청을 들라, 같은 말을 들어도 치론이는 개의치 않았다.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말을 재미있게 받아넘겼다. 어쩌면 치론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파스타를 종류별로 만들었다.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가 아니라 이미 여동생과 둘이 살면서 여동생의 도시락을 아침마다 준비해야 했고 자신의 도시락도 싸 가지고 와야 했다. 동생의 교복이 뜯어지면 꿰매는 것도 치론이가 했다. 우리 둘이 먹는 파스타가 식탁 위에 네 접시가 놓였다. 미트볼이 들어간 파스타, 토마토소스가 약간 묻은 파스타, 카레소스로 만든 파스타, 크림 파스타, 그리고 맥주가 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치론이는 나에게 음악을 틀어주겠노라고 했다. 치론이는 가요만 들었지만 나를 위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틀었다.


 “비교적 신나는 음악이 많아서."


 ‘맨 인 더 미러’가 나왔다. 우리는 턱을 괴고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들었다. 밖은 너무 무더웠고 집 안은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전기세는 걱정 안 해. 우리를 버리다시피 하고 멀리 있는 아빠가 내주거든. 미안하지 않게 해 줘야지."


 맥주는 차가웠고 파스타는 따뜻했지만 서서히 식어갔다. 맨 인 더 미러는 라이브였다. 88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부른 노래였다.     

 

 평생에 단 한 번의 변화를 코트 깃을 세우니 마음과 영혼이 흔들려 길거리로 나온다.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남자는 거울 속의 남자와 함께 시작하려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거울 속의 그에게 방식을 바꿔 보자고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     


 팝을 좋아하지 않던 치론도 '맨 인 더 미러'를 유심히 들었다. 녀석의 눈빛은 때 아닌 계절에 여러 날 내리는 비 같았다. 어두운 하늘도 있었고 빛바랜 오늘의 안타까움도 있었다. 이제 곧 바다가 될 강물의 미미한 짭조름함도 있었고 비가 고인 물웅덩이의 혼탁함도 있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치론이는 동생을 찾으러 담임선생님과 많은 곳을 다녔다. 저녁에 녹다운이 된 권투 선수같이 와서는 저녁과 술을 같이 마시자고 했다. 나는 늘 워터 덕에 있었고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입대를 하게 되었다. 내가 워터 덕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치론이가 나타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 댓 재즈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올 댓 재즈의 누나는 방학 내내 있었고 여전히 교포 화장을 한 채 우리를 반겼다. 쇼팽이 새끼 고양이의 발바닥처럼 부드럽게 밤을 수놓았고 맥주는 우리의 위장을 수놓았다. 입대가 2주 남았고 치론이는 여동생을 만났다. 다행히 어딘가로 팔려갔거나 술집에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여동생은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집으로 온다고 약속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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