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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2. 2021

나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분노 에세이

잘 보면 까치의 둥지가 보인다


매일 오전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받기 위해 가는 길목에 십 년 넘은(분명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내가 본 것만 십 년 정도이니) 나무가 있어서 매일 나무를 찍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의 모습도 달라진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을 보여주던 나무는 봄이면 슬슬 연녹색의 옷을 입기 시작하여 4월부터는 본격적인 녹음을 장착해서 오월이면 초록으로 한껏 자신을 뽐낸다. 살아있는 생명이어서 분명 아픈 날도 있을 텐데 나무는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자가 치유로 아픔을 낫거나 아픔이 심해져 시들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나무에 눈독 들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매일 나무를 촬영하면서 나무에 대해서 한 번씩 생각했다. 그렇게 그 나무의 사진을 찍은 지도 오래되었다.


3월이 되니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매일 아침마다 보는 까치의 분주함은 노래 가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10분 정도 서서 구경하기에 나무 위 까치의 분주함만큼 좋은 구경거리도 없다. 2층의 카페에 앉아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1층에서 고개를 꺾어 나무 위 둥지를 튼 까치의 부산함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소리 소문도 없이 나무가 뽑혀 나가고 말았다. 그 전날 이곳의 나무를 옮길 예정이라든가, 없앤다던가 하는, 그런 팻말이나 예고 같은 걸 전혀 알 수 없었다. 까치들 때문에 속상하고 오랫동안 봐오던 나무가 사라져서 몹시 섭섭했다. 공사 때문에 나무를 뽑았는데 공사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소방서를 허물고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규모가 상당한 지식산업센터를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볼 땐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나무를 뽑아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무를 없애고 말았다.


그놈의 지식산업센터 때문에. 도대체 지식산업센터는 뭐하는 곳일까. 그래서 찾아보니 공장형 아파트의 요즘 말이란다. 지식산업센터에서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파트 같은 것이다. 그저 인간이 들어앉아 사는 아파트를 짓는 것뿐이다. 거기에 허울 좋은 첨단산업이 접목하는 것이라 한다. 결국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나무가 사라졌다.


까치의 둥지도 사라졌다. 까치는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거리로, 아니 허공으로 내 쫓기게 되었다. 그저 돈만을 쫓는 인간들 때문에 돈이 필요 없는 생명체는 쫓겨나거나 사라지고 만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뭔가 도시를 움직이는 꼭대기에 앉아 있는 수장들이 꼴 보기 싫어진다. 공사를 하는 것도 참 밉다. 이하 글은 따로 적어서 올리려는 글인데 여기서 뭉쳐서 올려본다.

매일 오전 나무를 기록했다
날씨의 변화에 대항하듯 변함없는 모습
새싹이 올라오는 나무
까치의 둥지가 보인다. 나무는 변화하되 변함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물을 많이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비누칠을 해서 손을 씻을 때 비누칠하는 동안 물을 틀어 놓는데 그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마시는 물을 제외하고 물이 쓸데없이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잠그게 되었다. 그러니까 비누칠을 하는 동안에도 물을 잠그고 당연하지만 양치질을 하는 동안에도 물을 잠근다. 이건 좀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비빔면을 좋아해서 자주 해 먹었는데 찬물에 씻어야 한다. 하지만 손을 씻을 때처럼 그렇게 버려지는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그렇게 문득 든 생각은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왜 차게 해서 먹는 것보다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으면 시원하게 해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설거지도 콸콸 틀어놓지 않고 최소한의 물 만으로 하게 되었다. 몇 년을 그러다 보니 물세가 좀 줄어들었다. 유난 떠는 것 같지만 일단 습관이 되면 불편한 건 없다. 어차피 매일 해야 할 행동이면 밥을 먹듯 하면 된다. 밥을 늘 거창하게 한 상 가득히 차려 놓고 먹을 수는 없다.

소방서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지식산업센터를 짓고 있다

물이 아깝다고 근래에 생각이 드는 게 공사현장이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먼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도심지에서 건물을 부수고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 호수로 물을 뿌린다. 몇 시간을 호수를 들고 뿌리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 부족 국가라고 소리를 질러봐야 자본 앞에서는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몇십 년 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소방서가 있는데 드디어 철거를 하고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꼴 싸나운 걸 짓고 있어서 물도 미친 듯이 뿌려댄다. 몇 시간 동안 물을 뿌린다. 그래야 하겠지만 그래야 하는 것이 꼴 보기 싫은 것이다. 그 앞의 나무까지 뽑아가면서 이런 건물을 짓고 있다.


나무가 사라져서 사진 찍을 맛이 나지 않는 요즘의 오전이다. 지식산업센터에 얼마나 뛰어난 지식충들이 들어앉아 생활하는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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