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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4. 2021

오리훈제

음식 이야기


세상에는 먹고 싶은 음식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라도 먹은 음식의 종류로 따지면 또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 화면 속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음식의 종류가 있지만 우리는 하루 세 끼, 내지는 두 끼를 무엇을 먹을까로 늘 고민을 한다. 그것 참 희한하다면 희한한 일이다. 이렇게 먹을 게 많은 세상에서 뭘 먹을지가 늘 고민이다. 선택 장애를 겪는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우리는 간단한 선택의 기능을 점점 잃어간다. 똑똑한 바보가 되어간다. 이것 역시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먹었던 음식 중에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찾아서 먹게 된다. 그 음식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다. 그런 순환이 단골을 만들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음식의 맛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가서 현지의 음식을 먹으며 만족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긋지긋한 감염병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맛있게 먹는 음식 중에 자주 먹지 않는데 가끔 먹어서 맛있는 음식에 오리 훈제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리 요리는 닭처럼 백숙이나 진흙구이 정도로 먹는다. 하지만 오리는 많은 요리로 먹는다. 무라카미 류의 글에도 오리고기를 먹는 것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피와 골수 소스 위에 놓인 오리가 날라져 왔다.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냈다가 잊어버린 자신의 내장 일부를 몸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듯한 감각적이었다. 이렇듯 지구에서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치는 베르사체를 능가하고 내 하루 세끼 식사비보다 더 비싼 것’라고 되어 있다.


오리 요리는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비싸기도 하다. 중국의 유명한 북경오리도 저렴한 것은 만원 미만이지만 비싼 건 33만 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어떻든 오리가 닭보다는 비싸다. 불포화지방산이라는 것 때문에 닭보다는 좀 더 위에 자리 잡은 요리임에는 확실하다. 오리훈제도 가끔 먹는데 맛있다. 내 입맛에 맛 이즈 뭔들, 이지만 훈제 같은 맛을 집에서는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훈제로 나온 음식을 사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리 훈제도 집 앞 마트에 가끔 들어온다. 그래서 한 마리?를 사면 몇 번 나눠서 이렇게 먹을 수 있다. 훈제는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마늘이나 양파를 넣어서 뜨겁게 데워서 먹으면 더 맛있다.


오리 훈제하니까 추억이 하나 있다. 친구와 내가 사는 집의 딱 중간 정도의 동네에 작은 술집이 하나 있었다. 여러 안주 중에 오리훈제도 있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사는 곳의 중간에서 만나 그 집에서 소주 한잔을 했다. 왕왕 가다 보니 주인(아주머니)하고 인사도 하게 되었다. 보통 거기 가면 오리훈제 한 마리를 주문해서 소주를 한 두 병 마시고 왔다. 오리 훈제라고 해서 그 술집에서 요리를 한 것은 아니고 대체로 마트에서 구입해서 데워서 내주는 것이다. 긴 다리 하나 들어가 있고 그 주위에 (사진에서처럼 보이는) 오리 훈제 요리였다. 그리고 술집에서 파는 오리훈제는 좀 비싸니까 반찬들이 딸려 나왔다. 그래 봐야 김치나 양배추에 케첩이 뿌려진 것과 땅콩 같은 것들이 나온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다니다가 늘 그렇듯이 그날도 친구와 함께 오리 훈제와 소주를 주문했다. 이야기를 하며 오리 훈제를 먹었다. 그런데 친구가 한 마리 더 먹고 싶다는 거였다. 친구는 여자다. 한 마리 더 먹자는 말은 그만큼, 정말 배가 너무 고팠다는 말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배고픈지도 모르고 지냈다가 이렇게 먹고 나니 더 먹고 싶다는 거였다. 친구와 나는 오리 훈제를 좋아해서 한 마리 더 먹는 것에 좋았다. 오히려 늘 먹을 때면 주문한 한 마리가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주인에게 한 마리 더 주문할 테니 밑반찬을 좀 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된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반찬은 가격 때문에 한 테이블에 한 번 나간다는 거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주문을 새로 한 마리 더 하는데도 안 되냐고 물으니 그래도 안 된다는 거였다. 이런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 술집은 친구와 내가 같이 오기가 수월해서 왕왕 왔던 곳인데 올 때마다 손님은 늘 없었다.


주인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단호했다. 주인의 머릿속에는 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이,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먹을 것을 계산을 다 한 다음에 일어나서 옆의 테이블에 가서 앉아서 한 마리를 주문했다. 이러면 밑반찬이 나오는 거에 문제가 없죠?라고 하니 주인은 우물쭈물 아무 말 없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니. 아무리 세상에 여러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까지만 생각하고 그날은 다른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고 나왔다.


당연하지만 이후로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장사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을 혈액형으로 나누면 몇 가지 안되는데 인간은 얼굴처럼 다 , 전부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집에서 저렴하게 구입해서 더 맛있게 오리훈제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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