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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4. 2019

무감각의 하루가 지나간다

시라고 속삭이고픈 글귀




5시 반인데 벌써 어두워졌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려나 보다. 오늘 이전에는 낮의 해가 아직 힘 있어서 뜨거울 정도였는데 이제 오전에도 낮에도 해가 그렇게 뜨겁지 않다. 태양의 열기가 힘을 잃어 그저 조금 눈살을 찌푸릴정도다. 이렇게 한 세계가 또 바뀌어 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계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바뀐 것일까. 그런 생각을 멍하게 하고 있으면 인간이란 정말 점 같은 조밀한 존재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디다스 체육복 안에 여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멍하게 계절을 느끼고 있으니 현실감이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마치 바다 밑에서 숨이 막히지 않아서 이상하군, 하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사람들은 같은 모습이 없고 전부 제각각이며 모두가 하나씩의 고민을 안고 있다. 인간은 질병과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질병과 고군분투한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살기를 인간은 바라지만 자연은 그런 인간의 바람을 무시하는 것 같다. 블로섬 디어리도 지병으로 죽었고 윤정희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했다. 벌써 10년 전부터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독감 예방을 하려고 내과를 찾았다. 로비의 티브이에서는 축구 중계가 한창이고 대기하고 있는 노인들은 멍하게 티브이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팔팔한 청년의 축구 선수들을 보는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빨리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아서 병원을 나가고 싶은 생각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현실감이 떨어졌다.


창으로 앙증맞게 들어온 햇살이 목덜미를 건드리는 느낌이 든다. 창에 부딪혀 밑으로 꺼진 햇살을 제외하고 불투명한 창을 투과하여 목에 닿은 햇살이 따사롭다. 미미한 힘으로 자주 마사지를 해 준다. 살며시 눈을 감으니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것 같다. 그리고 그대로 깨어나지 않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내가 보아온 죽음은 늘 떠들썩했다. 어깨를 잡고 흔들면 깨어날 것만 같은 모습. 죽은 모습은 언제나 그랬다. 현실감이 없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고요하고 고요하게 눈을 감는 방법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방법을 택하고픈 마음을 잠시 가져본다. 눈을 감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 생각한다. 연어 두 조각을 먹고 뜨거운 정종을 한 잔 마셨던 곳에 대해서. 블로섬 디어리가 소녀 같은 목소리로 맨하탄을 부른다. 어째서 목소리가 이렇지? 내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지우개로 반쯤 지워진 상태로 생각이 난다. 나는 곧 눈을 떴다, 혼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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