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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7.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6

단편 소설


6.

 통속이라는 거취 속에 나를 가둬 둘 필요가 없었어요. 내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당신에게로 가 있는 느낌입니다. 아주 황홀한 기분입니다. 당신의 그 딱딱하고 큰 그것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아주 강한 수치심도 들었습니다. 수치심이라는 게 아주 몹쓸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느낀 수치심은 아주 묘했습니다. 버려지고 채찍질을 당하는데 더 받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당신은 제 안에서 저를 마구 꾸짖었습니다. 당하고 능멸이 가능하지만 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야릇하고 슬픈 감정을 또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팬티를 내리고 묻은 애액의 냄새를 맡는 모습이 섹시하다고 느껴본 적 역시 처음입니다. 이런 모습은 통상 저질스럽고 변태스러워서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하면 맞장구를 쳐줘야 합니다. 모두가 꺼려하는 모습이지만 당신이 저의 냄새를 맡는 모습은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의 냄새를 맡는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만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를 하게 되면 의도와는 다르게 비켜가는 대화의 습성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손은 굉장합니다. 도식이나 형식이 없습니다. 그저 본능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것이 허벅지 안쪽에서부터 제 머리를 녹아내리게 합니다. 녹아내리는 느낌 그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혀 또한 사랑입니다. 당신의 혀는 말을 잘하는 능력 이외에 또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렇게 전부 메일로 할 겁니다. 저를 나무라지 마세요. 저를 난잡한 여자라 하지 마세요. 노래의 가사처럼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욕하지도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능욕당하기를 바라지만 나무라지만 말아 주세요. 당신이 버스에서 팬티 속으로 손을 넣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황홀했습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빛이 온통 나를 비추는데 저는 그만 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사막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라고 확신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얼굴은 그저 붓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평면적이고 정장은 근래에는 볼 수 없는 정장의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남편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 남편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세하게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매일 나타나서 계단 위에 앉은 남자의 모습이 남편의 외형은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어떻든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질문을 하면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아?"라며 그녀는 겉도는 말을 할 뿐 더 이상 남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계단 위의 남자가 평소의 밤처럼 계단에 앉아 있는데 평소와 달라 보였다. 딱히 어디가 달라 보이는지 딱 집어내기에는 애매했지만 달랐다. 얼굴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늘 하고 있던 가고일 같은 포즈도 변함이 없었다. 기분 나쁜 미소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어떤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남자는 필시 평소와는 달았다. 어제 같으면 남자가 여기를 보는 것을 확인한 다음 내가 할 무엇을 하거나 다른 생각에 잠기거나 잠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보이는 남자 때문에 남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에게 무엇이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지만 기분 나쁜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꼭 상이 달라 보이면서 페럴렐 월드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 지점을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보면 으레 그런 현상이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 무엇이 달라 보이는 것일까. 남자를 계속 보는 동안 시계(時)가 비틀어지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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