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08.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7

단편 소설


7.


 남자가 앉아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은 같은 곳이지만 다른 시간이 흐르는데 어쩌다가 같은 시간에 같이 놓이게 된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남자가 현실에 들어옴으로 시계가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그녀의 남편이 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시공간에 같은 사람이 두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외적으로는 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맞다. 저쪽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남편은 그 세계에 맞는 형태를 하고 있다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남자를 보니 달리진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평소보다 조금 크게 보였다. 그러니까 형태가 커졌다는 것이 아니라 원근감이 조금 더 상세해졌다. 남자는 한 계단 앞으로 내려와 앉아 있었다. 남자는 계단 하나를 내려옴으로써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현실의 그녀 남편은 그녀와 나와 관계를 알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알고 있지만 그녀처럼 3명이서 모두 만족할 만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기분 좋은 소리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속마음을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저쪽 세계의 남편은 이쪽 세계로 건너와서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일까.      


 계단 위의 남자가 한 계단 밑으로 내려온 날은 그녀와 제주도에 갔다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가 여행을 제안했다. 나는 불안했다. 가지 않았음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쪽 세계의 그녀의 남편이 매일 밤 나타나는 것 때문에 여행을 가도 그녀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사천리로 일박의 숙소를 예약했고 택시도(차를 렌트하지 않았다) 예약을 해 놓았다. 물론 비행기 표도, 저가 항공이 아닌 것으로.


 남편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남편은 출장을 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틀 동안 제주로도 갔다 왔다. 오늘 아침 일찍 가서 내일 밤늦게 온다. 이틀 동안 택시가 우리를 싣고 다녔다. 목적지도 없었다. 택시기사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우리가 가 달라는 곳으로, 또는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택시는 어딘가로 데리고 가서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녀와 나는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위스키를 홀짝였다. 그녀는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나의 주눅 든 페니스를 만졌다. 그녀는 주눅 든 나의 페니스에 혈액을 돌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나의 페니스를 만지는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척 운전에만 집중을 했다. 아마도 이런 여행 코스에 적합한 택시기사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돈이 많은 그녀는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손놀림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그녀를 사랑한 죄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