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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6.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5

단편 소설


5.

 

 클릭 한 번으로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당신에게 바로 들어갑니다. 무서우면서도 흥분되는 일입니다. 편지가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놓게 만들고 편안하게 만드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박한 여자입니다. 그러니 저를 천박하게 대해도 상관없습니다. 깨지면 안 되는 유리병처럼 저를 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교양 있는 여자처럼 대하는데 어쩔 땐 진절머리가 납니다. 당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대해 주세요. 가끔 섹스에서 저를 천박하게 대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정말이에요. 너무 좋아요.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내 안에 들어오는 기분을 나는 어쩌면 좋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미칠 듯이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항상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도시락까지 싸왔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겠어?” 나의 물음에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남편은 도시락에 대해서 일일이 따지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직원들의 도시락까지 준비하고 있다면 한다면 그만일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난 후의 일이라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나보다 좀 더 살아서 그런지 나의 마음을 대체로 꿰뚫고 있는 것 같지만 또 나의 마음과는 전혀 먼. 그러니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없이 순수한 어린이 같은 모습.     


 그녀와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제주도라고 해도 1박을 하고 오전에 바로 오는 것이다.


 “남편이 독일로 출장을 갔어. 나 당신과 바다가 보고 싶어”라고 해서 갑자기 그녀가 나의 팔짱을 예쁘게 낀 채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는 나를 창가에 앉게 했다.


 “그래야 창밖의 하늘을 보는 척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옆구리에 땀이 밸 정도로 그녀는 나에게 붙어있었다.     


 남편은 애당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관계를. 하지만 모른척하고 있는 겁니다. 남편이 당신을 찾아가서 마구 휘두르지 않을 거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이 일로 나를 내팽개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기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 남편을 위하는 내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집착일까요, 사랑일까요, 호기심일까요. 그 어떤 것이 되었던 저의 마음은 일정하다는 겁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과 누울 수 있다면 저에게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는 걸 자제하고 있다.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면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말을 하고 만다.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와는 다른 이야기 속으로 그녀는 나를 이끈다. 그녀와 보낸 여러 날 밤을 후회하거나 마음 졸였던 적은 없었다. 단지 이제는 그녀가 나를 버릴까 봐 그것에 마음 졸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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