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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1. 2021

최 흑 오 19

단편 소설

 

[마지막]


 왜곡된 기억으로 앞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왜곡의 기억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라는 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조커의 얼굴을 한 채 양립된 마음을 동시에 바라보며 그렇게 상대방을 대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외로움 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멀리까지 왔기에 이곳에서 버리면 된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지도 않고 하드디스크에도 없다.


 그녀와 처음 섹스를 했던 날 그녀는 술이 취했음에도 부끄러워했다. 적당한 가슴에 적당한 엉덩이가 마음에 들었다. 여인숙의 허름한 방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건드릴수록 반응이 왔다. 그녀와 만나면서 몇 번 섹스를 했지만 입으로 해 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의 페니스를 입으로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달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처음 본 여자에게는 당연하게도 입으로 빨아달라고 했다. 어째서 사랑하는 이에게는 원하는 걸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개를 숙여 보니 여자가 아주 기계적으로 잘 빨고 있었다. 그녀는 우산 속의 남자와 격렬한 섹스를 했을 것이다. 내가 못해준 절정에 도달하는 섹스를 우산 속의 남자는 그녀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일종의 분노와 함께 결락이 동시에 몸을 덮쳤다. 그리고 뒤따르는 격렬한 외로움.


 나는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을 외롭다고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외로울지도 몰랐다. 혼자서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옆에 그녀가 있음에도 나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일이 비틀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자가 혀로 페니스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전조가 있어야 했지만 카타르시스 같은 것도 없이 그저 죽 나오고 말았다. 여자는 미간을 좁히며 그것을 삼켰다. 그리고 칭찬해달라는 듯 미소를 보이더니 돈을 챙겨서 더 이상 우리는 볼일이 없다는 듯 인사를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나갔다. 돈을 집어 드는 손톱의 매니큐어는 더 벗겨진 듯 보였다. 몸에 있던 무엇이 그대로 빠져나가 버린 기분이었다. 의도치 않게 여자의 입에 사정을 해버렸다. 최흑오는 나에게 물에 희석해서 버리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입에 사정을 했으니 위로 들어가 소화가 되어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잔재라는 것들은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소멸해왔다.         


 ‘어떻게든 되겠죠,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어떻게든 될 일은 어떤 식으로든 되고 만다.


 고개를 들어 둘러본 모텔의 모습이 생기가 빠져나가버린 그 여자의 손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의 냄새가 가득했고 집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항구에 있는 모텔의 티브이는 잘 나오지도 않았고 휴대전화기의 송신도 잘 되지 않았다. 숙소에 돈을 더 지불하고 이틀을 더 머물렀다. 다음 날 포구를 걷고 마을을 걸었다. 털 빠진 개들이 보였고 포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이 보였다. 잠시 그렇게 마을을 둘러보고 들어와서 누웠다. 침대 시트도 갈지 않았고 그대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잠시 해가 뜨는 것 같더니 이내 흐리고 몇 시간 동안 비가 내리고 그 사이로 다시 해가 잠시 보이더니 또 구름이 해를 가려서 흐린 날이 되었다. 하늘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생이 진지하게 그려놓은 그림 같은 하늘이었다.


 조금 살이 빠졌다. 나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딘가로 흘러가 버린다. 늘 그래 왔다. 의도라는 자체가 없었기에 어쩌면 공백이 생기고 공백의 부피가 커지면서 의도가 흐를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지면서 의도는 그 길로 진입을 해 버리고 의도를 제외한 것들이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나는 그녀가 무리해서 사준 휴고보스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다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의도는 물처럼 다른 길을 따라서 졸졸 흘러간다.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좋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또 다른 길로 흘러가버린 의도는 그것대로 하나의 체재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의도가 되고 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손길을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놓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고 예쁜 손으로 느껴졌던 따스한 그 온기만 있어도 나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믿어 왔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우습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USB를 버리러 왔으니 나가서 장소를 찾아봐야 한다. 장소를 찾아서 버리면 된다. 바닷가이니 어딘가에 던지고 나면 끝이다. 나는 손으로 USB를 만지작거렸다. 이 안에는 그녀의 수많은 사진이 있다. 3개나 되는 USB에 가득 들어있는 그녀를 이제 나는 버리려 한다. 역시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렀다. 우산을 쓴 남자와 잠을 잔 그녀의 몸에도 상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USB를 버리고 나면 나는 나의 방호벽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방호벽은 좀 더 높아질 거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방호벽은 거대한 외로움이라는 것 역시 나는 알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날 밤 잠이 들었는데 어떤 소리에 잠에서 깼다. 지하주차장에서 들리던 그 공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쥐들이 내는 소리였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먼저 갉아먹듯 자글자글 거리는 공명은 조금씩,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 위로 덮고 귀를 막았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공명은 먹구름 사이를 지나 포구에 정박한 배들의 선미를 건드리고 정중하지만 막힘없이 다가왔다. 자글자글한 공명은 붉은 눈빛을 띠며 숙소 가까이 왔다. 그때 인터폰이 크게 울렸다. 그리고 인터폰은 끊어지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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