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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6. 2021

최 흑 오 3

단편 소설


3.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더러운 꼴을 씻겨 내려는 듯 구멍 뚫린 하늘에서 신나게 비가 내렸다. 그런데 주차장 옆에 심어놓은 30년 된 무화과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갑자기 잘려버린 것이다. 번영회에서 나무를 자른 모양인데 어제까지 잘 있던 나무를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왜 잘라버렸을까. 세입자들의 입김이 있었을까. 나뭇잎이 떨어져 주차장에서 나오는 손님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말을 가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잘 있던 나무를 한 순간에 잘라버리다니 이상했다.


 자동차의 잘 움직이지 않는 와이퍼를 3단으로 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무화과나무가 있던 자리의 밑동에 쥐 세 마리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쥐는 잘 먹었는지 신발보다 더 컸고, 눈이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쥐가 없다는 말을 기계실 직원에게 들었는데 쥐는 보란 듯이 무화과나무가 잘린 곳에 비를 맞고 앉아 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건물 밖이기 때문에 기계실 직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 마리의 쥐가 미동도 없이 비를 맞으며 운전을 하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은 기이했다. 차를 몰고 건물을 빠져나와 도로 위에 차를 올렸다. 집으로 가는데 30분가량 걸린다.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비가 차 뚜껑에 떨어지는 소리도 시끄러워 그대로 운전만 했다.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추었을 때 우산을 쓰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를 발견하고도 내가 내리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남자의 팔짱을 끼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서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을 때 그녀는 아주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산을 썼음에도 비가 온 몸을 다 적시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애써 차려입고 나온 옷이나 발이 더럽혀지거나 젖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우산 밑에 있는 여자는 분명 그녀였다. 그녀를 닮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녀의 언니도 아니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서 상향 등으로 신호를 하는 바람에 기어를 넣고 집으로 왔다.    


 나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녀에게 달려가 지금 옆에 있는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어야 했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모습을 보며 지나쳐 집으로 왔다. 옆의 남자에게 붙어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내 남아있는 찝찝한 이물감처럼 감돌았다. 그런 기운은 나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씻지도 밥도 먹지 못하게 했다. 사실 얼굴을 마주 보며 더 이상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지만 생각은 진전이 없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는 한 번 울리고 받았다.


 “어, 웬일이야?”라고 그녀가 물었다.


 “지금 어디야?”


 “지금 집이지. 자기는 퇴근했어?”    


 그녀의 거짓말에 나는 어쩌면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와 있다. 그리고 신호대기를 할 때 두 사람이 어디를 가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만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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