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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5. 2021

최 흑 오 2

단편 소설


2.

 한 번 온 사람이 계속 오게 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보는 앞에서 얼굴을 수정해주고 보정한 듯, 안 한 듯하게 사진을 만들어주면 된다. 지극히 간단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꽤 부리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면 결과는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고 알고 있었다. 신분확인을 하는 인상사진은 나라에서 정해놓은 법이 있지만 그 법을 무시하고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하고 찍히기를 바라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으면 모든 순간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당연한 것은 어딘가에서 틈이 생기고 균열이 가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센 날이면 인상사진을 찍는 빈도가 떨어진다. 레인 시즌 중에서도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손님이 없어서 책을 읽고 있거나 애인인 그녀와 연락을 평소보다 많이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계단으로 내려가는 일이 많았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그 경계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문이 열리면 후욱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지하 주차장의 급격한 냄새에 적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계단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계단은 있지만 계단으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사람을 8년 동안 거의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일을 싫어한다. 오전에 출근을 해서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다 보면 지하 1층에서 탄 사람이 지상 1층에서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작 한 층 정도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은 인구 대비 비율이 어떻게 될까. 왜 이런 건 통계청 같은 곳에서 조사를 하지 않을까. 정작 궁금한 건 전혀 알 수가 없다. 계단은 늘 고요하고 소음이 없다. 사람들의 흔적도 없지만 가끔 홈리스가 그랬는지 똥이 있는 경우도 있고 오줌을 싸 놓기도 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인간의 흔적이 빠져버린 기이한 계단의 세계가 있어서 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그 공명의 소리는 지하 3층과 4층 사이에서 들렸다. 공명처럼 들리는데 공명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날이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그날, 11시가 넘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그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3층과 4층 사이의 코너에서 울리는 공명은 현재 이 세계에서 벗어난 소리였다. 적막한 낯선 공간을 만들어 버린 지하 주차장은 건물 밖의 세상과는 벽을 쌓고 단단한 세계를 그 공명을 통해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처음 들었던 그 공명은 무섭고 우울했다. 그런 소리를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건물이 오래되었기에 쥐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기계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건물은 비록 낡고 오래되었지만 쥐는 없다고 했다. 상가번영회 사무실에서 다른 건 몰라도 방역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건물의 닥트와 구석진 곳에도 쥐와 벌레는 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공명은 내가 다가가면 소리가 좀 더 작아지고 내가 멀어지면 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느껴졌고 사실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선에서 무엇인가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기계가 내는 소리도 아니며 자연주의적인 소리도 아니었다. 굳이 말을 하자면 영적인 소리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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