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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7. 2021

최 흑 오 4

단편 소설


4.

 인상사진은 필요에 의해서 찍는 사진이다. 물론 개인이 보관하고 싶어서 찍는 사람도 있지만 인상사진이나 증명사진의 용도는 확실하기에 찍어야만 해서 찍는 것이다.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컴퓨터에 이름을 적고 보관하고 있다가 한 달 뒤에는 삭제를 한다. 그 파일은 손님들의 이메일로 다 발송을 하기 때문에 여기 컴퓨터에 없다고 해도 이메일을 열어서 사용을 하면 된다. 인상사진은 보통 자신이 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기를 바라며 촬영하는 경우가 다분하지만 목적은 제삼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는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순위이다. 그렇지만 어떤 여자들은 그런 것은 안중에 없다.


 사진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놓은 자신의 얼굴에서 벗어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레임을 건다. 여권사진은 법적인 규정이 있어서 거기에 맞게 촬영을 해야 하지만 컬러렌즈를 빼지 못하겠다느니 머리를 어깨 앞으로 늘어트리고 찍겠다느니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 장면을 본 이후로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촬영을 해 주었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아무런 탈이 없다. 단지 시청에서 다시 찍어오라는 말을 듣고 짜증을 내며 다시 와서 촬영을 하는 수고를 겪지만 결국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 순전히 그 손님의 시간과 차비를 버려가며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 주면 된다. 잠시 사진관을 비워놓을 때에도 연락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 같은 것도 붙여놓지 않았는데 거기서 좀 더 모호하고 느슨해진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는 전화를 잘 받아 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주말에 만나도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그녀의 손을 그 전처럼 잡을 수 없었고 잠을 자는 것도 피하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 그런 듯 내가 손을 잡지 않아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아도 평소처럼 잘 대해 주었다. 그녀에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어쩐지 말을 꺼내는 것이 힘겨웠다. 그녀와 마주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면 그녀는 나의 눈동자에서 아주 약간 비켜간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에게 제대로 말을 해야 했다.   

      

 그 손님이 찾아온 건 일 년 만이었다. 손님은 일 년 만이라고 했다. 기억이 나는 없었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물에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고집스럽게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어 놓고 컴퓨터 모니터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뮤즈의 음악을 좋아해서 틀어놨지만 지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왜 그런지 그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매일매일 사진을 하나씩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는데 전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비 비린내를 몰고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비가 와서 날이 흐리고 어두운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선글라스는 라이반으로 여자의 얼굴을 반이나 가렸다. 머리는 아주 흑발로 살짝 웨이브가 있었고 입술이 도톰해서 입술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여자는 재출력을 바란다고 했다.


 “언제 찍었습니까?”


 “딱 일 년 전에 왔어요.”


 “일 년 전 사진은 없습니다. 한 달 이전의 사진은 전부 삭제를 했거든요.”


 “컴퓨터에 있어요. 검색해보세요”라는 여자의 말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어서 나는 조금 위압감을 받았지만 다시 “사진은 다 삭제를 했습니다. 이 메일로 보낸 사진으로 검색을…….”까지 말했을 때 여자는 “컴퓨터에 있습니다. 검색해보세요.”라고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도톰한 입술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니 부드러운 강압에 나는 눌렸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검색을 해서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최흑오”라고 짧게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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