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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8. 2021

최 흑 오 5

단편 소설


5.

 최흑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특이한 이름이라면 나는 기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을 재출력하는 손님은 대체로 단골이었고 이름이 특이하다면 나는 분명히 기억을 했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최흑오라는 이름은 무슨 뜻일까. 도대체 최흑오라는 이름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일 년 전에 왔다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기억이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 기억은 그녀에 대한 기억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어떻든 여자에게 최흑오라는 이름이 컴퓨터에 없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검색란에 최. 흑. 오.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엔터키를 눌렀다. 사진이 하나 나타났다. 분명하게 있었다. 날짜가 확실하게 일 년 전의 사진이었다.


 “여권사진으로 인화해주세요.”


  여자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을 했고 나는 사진을 여권사진에 맞게 크롭을 하고 출력을 하려고 했다. 여자의 사진을 조금 확대해서 보니 눈동자가 다른 사람들의 눈동자와 달랐다. 눈동자에 채도가 조금 빠져 있는 색을 지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도 부린 적이 없기 때문에 사진은 오롯이 내가 전부 찍는다. 대량의 손님들이 오는 곳이 아니기에 특이한 손님은 기억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눈동자를 가진 손님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 등 뒤에서 여권사진이 필요하다고 기다리고 있는 여자는 누구일까.


 “지금은 눈에 문제가 생겨 선글라스를 벗고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찍어 놓은 사진이 있으니 재출력을 해서 사용하려고 해요.” 여자의 말에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손님, 그런데 제가 한 달 이전에 찍은 사진 파일은 전부 삭제를 합니다. 어떻게 여기에 사진 파일이 삭제되지 않고 있다고 알고 계시는 겁니까? 뭐랄까 신기합니다. 어떻든 사진은 이제 삭제를 할 테니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시면…….”


 “이제 그 사진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 삭제하셔도 돼요.”


 “네?”


 “신분확인을 하는 증에는 한 번 썼던 사진은 쓰지 못할 테니 이제 그 사진은 필요가 없어요. 주민증에도 운전면허증에도 그 사진이 붙어 있거든요. 이제 여권을 만들고 나면 그 사진은 전혀 쓸모없는 사진이 됩니다. 곧 눈동자도 달라질 테고”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리고 커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틈을 가졌다.


 “그 소리는 쥐가 내는 소리예요.”


 나는 여자 손님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쥐의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그 공명이 쥐 소리로 들릴 때면 당신은 이 건물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아직은 조금 시간이 있지만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어요.”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저는 여기서 팔 년이나 장사를 했고……. 또…….”


“그 소리는 쥐들이 내는 소리예요. 시궁쥐와 들쥐를 섞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어요. 그 쥐들이 다 자라면 30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하지만 아마도 더 큰 쥐 들일 거예요.”


 여자가 말을 끝냈을 때 그녀가 남자와 우산을 쓰고 있던 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무화과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본 세 마리의 큰 쥐들이 생각났다. 아마 그 쥐들을 말하는 것일까.


 “저, 그 쥐들을 본 것 같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습니다.”


 여자는 나의 말에 갑자기 미동이 없었다. 꼭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 세계가 멎은 것처럼 가게 안의 모든 소리를 웅 하는 하나의 집약으로 그러모으는 것처럼 기이했다. 여자의 도톰한 입술이 굳어 있었다. 선글라스 그 안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물러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눈동자 같은 거 보이지 않아도 대화를 하는 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동안 인간은 학습을 해 왔기에 학습된 논리에서 벗어나면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애인인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눈동자에서 벗어난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역시 이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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