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상
태풍 오마이스가 짧고 굵게 지나갔다. 새벽 두 시쯤에 아파트 창문을 강하게 때리는 비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겁이 나는 소리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작년에 온 태풍보다는 괜찮았다. 왜냐하면 작년에는 베란다의 창문틀에 젖은 신문지를 전부 끼웠는데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태풍이 오기 전에 계속 비가 왔다. 7월까지 내내 폭염이다가 8월이 되니 느닷없이 날이 계속 흐리고 연일 비가 오는 날의 반복이었다. 태풍이 오기 전에도 비 때문에 대지가 축축해있었기 때문에 소형 태풍이라지만-두, 세 시간 태풍이 왔지만 피해를 본 곳은 공멸 수준이다. 피해가 난 곳은 5년 전에 차바가 왔을 때에도 모두 침수가 되었다.
태풍이 온 후에 강물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흐르는 흙탕물이다. 물이 조깅코스까지 찰랑찰랑할 정도로 올라왔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강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어디로 몸을 피할까. 강물 속에서도 우르르 콰쾅하며 휘몰아치는 엄청난 소용돌이의 물소리 때문에 물고기들도 긴장을 할 텐데 다 어디에서 이 소용돌이 같은 물결을 피할까. 더불어 태풍이 오면 새들과 곤충들은 어디로 태풍을 피하는지 궁금하다. 보통의 맑은 날 강변에 나오면 메뚜기들과 민물게와 각종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비가 쏴아 쏟아지면, 태풍이 몰아치면 그들은 어디에서 몸을 숨길까.
이렇게 흙탕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가까이에서 들으면 대단하다. 보통은 강물이 흐르는지도 알 수 없다. 호수처럼 물이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풍이 오고 난 후에는 강물이 쏴아아아 하며 흐른다. 소리가 크다. 소리로 겁을 집어 먹는다. 시각적인 두려움만큼 청각적인 공포도 크다.
태풍 때문에 강물이 조깅코스까지 뒤덮고 난 후에는 모든 풀들이 쓰러져있다. 왜가리 한 마리가 마치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 버려 망연자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신기한 건 태풍이 바로 지나가면 강변은 진흙과 냄새와 쓰레기와 대환장파티인데 태풍이 물러가자마자 낚시꾼들은 바로바로 나와서 낚싯대를 강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옆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가득가득 담겨 있다. 여기 강은 바다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 민물에 사는 붕어보다는 숭어나 전어 같은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그래서 손질해서 먹기 까다로운 붕어보다 먹기가 수월해서 그런지 낚시꾼들이 매일매일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한다.
그리고 또 열심히 달린다. 비가 내리고 있어도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여름인데 한여름이 아닌 이런 날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 아주 굽 굽 해서 땀이 엄청나게 난다. 양말이 땀에 젖을 정도로 난다. 그래서 꿉꿉한 날에는 오히려 땀을 옴팡지게 흘려주는 게 상쾌하다.
이 하천의 길로 가야 하지만 역시 여기도 물이 올라와서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이 길로 가는 이유는 이 하천에는 오리들이 아주 많이 산다. 오리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과 오리가족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이 장면은 풀숲 오른쪽은 강이고 풀숲이 끝나는 바닥은 조깅 코스로 자전거가 많이 다닌다. 그리고 왼쪽 편, 풀숲의 반대편은 주택가다. 그런데 풀숲에서 빠져나온 민물게 한 마리가 자전거가 싱싱 달리는데 도로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화로 오지 말라고 했더니 한 번 날을 세워 해 보겠다며 나에게 덤비는 민물게 녀석을 찍은 사진이다. 얌마, 이쪽으로 가면 저 자전거 바퀴에 깔려 박살 난다고.
너 인간 녀석 내가 상대해 주마! 어흥냐홍!
또 달려간다. 열심히 달릴 것 까지는 없지만 어차피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니까 거기까지는 달려서 가야 한다. 조깅을 하다 보면 돌아와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게 좋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일전에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을 봤는데 잘 나가는 일본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이 전부 한국인으로 나온다. 60년대 오사카 판자촌에서 곱창집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연극으로 꽤나 유명한데 영화가 되었다. 일본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재일교포로 한국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대사를 한다. 그들은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이 서툴고 일본인은 아니지만 일본말을 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는 세대다. 그들은 돌아갈 곳에 없다. 아무튼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태풍에, 비를 맞아서 그런지 힘이 없는 듯 보이는 비둘기.
그간 닭둘기라고 멸시했는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역시 넌 평화의 상징. 아무 때나 똥만 싸지 말자.
인공광과 자연광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누가 더 예쁘고 아름답고 가 없다. 둘은 인간을 위해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춰준다. 밝음과 맑음을 준다.
이틀이 지났음에도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강가에는 역시 낚시꾼들이 있다. 예전에는 보통 낚시꾼이 낚싯대 한 두 개를 들고 나왔는데 근래에는(코로나 이후로는) 대여섯 개씩 낚싯대를 들고 와서 낚시를 한다.
비가 오고 흐린 와중에도 무지개가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은주야 보남파초노주빨 무지개 노래를 부르자.
이 녀석은 이틀이 지났음에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다. 태풍에 짝을 잃은 걸까.
이쪽 하늘과 저쪽 하늘의 분위기가 달랐다, 나를 경계로 흐린 하늘과 좀 더 흐린 하늘이 같은 하늘에 있었다.
태풍이 와서 무섭고 죽을 것 같지만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든 다시 원 상태로 되돌아가려 한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기계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망가진 것들은 사람들이 뭉쳐 영차영차 되돌려 놓는다.
저 멀리 구름이 꼭 마그리트의 구름 같다. 우리는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서 오밀조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의 아픈 일들을 내일이면 다 잊고 다시 춤을 춘다. 오늘도 달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자.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ln8JAL_mLaU
이현석의 학창 시절이다. 이현석의 데뷔곡으로 신난다. 그리고 노래가 좋다. 이현석은 노래 부르기 전에 이미 기타로 평정한 기타리스트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뭣도 모르는 우리끼리는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라며, 신대철, 이태섭(k2와 서태지 하여가에서 기타를 연주)과 함께 나머지 한 명이 이현석이라며 저 멀리 바다 건너에는 잉위 맘스틴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이현석이 있었다고, 꼴에 그런 걸로 내기하며 놀았다. 이 모든 게 어린놈의 자식들 주제에 음악 감상실에 매일 들락 거렸기 때문이다. 서태지처럼 고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서로 닮기도 했다. 중간 간주의 기타 연주는 정말 최고다.
그래, 그때는 몰랐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