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30. 2021

최 흑 오 17

단편 소설

17.


 “나타난 쥐들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아요. 쥐들이 당신의 집에서 당신의 형태가 당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곧 이리로 올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쥐들이 이리로 들어와서 일주일 가량의 시간 동안 서서히 죽어갈 거예요. 쥐들에게 필요한 건 당신 내면의 대립되는 마음이거든요. 방호벽을 치면서도 방호벽이 뚫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쥐들에게 필요한 거예요. 쥐들은 당신의 냄새를 맡고 당신의 잔재를 먹을 거예요. 쥐들은 그러면 당신의 그 마음을 가질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당신의 집 변기에도 몇 마리의 쥐가 빠져 죽어 있을 거예요. 쥐들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당신의 마음을 갉아먹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쥐들은 이곳에서 죽어 갈 겁니다. 어쨌든 짐을 챙기세요. 이곳을 나가야 해요.”


 “전 그럼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집도 가게도 아닌 곳으로 가면 됩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야 했지만 서랍에 있는 16기가 USB만 3개를 들고 나왔다. 지금 상황에서 고가지만 카메라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고가의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을까. 무거워서 일까.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일까. 아무리 그래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보다 훨씬 낫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두고 나왔다. 그것이 사진관 안의 모든 물품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지만 나는 그대로 두었다.


 “어디 조금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게 나을 거예요. 이대로 떠나세요. 지금 당장 버스터미널로 가서 시간이 되는 버스를 타고 아무 곳으로 가는 겁니다. 당신이 유념해야 할 사항은 그곳에서 여자를 만나거나 돈으로 섹스를 하되, 절대 그 안에 사정을 하면 안 돼요. 아시겠죠. 지금처럼 반드시 물에 희석하든지 휴지는 물에 버리도록 하세요. 그것만 유념하면 됩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째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당신을 도와주는 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군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자 짐을 다 챙겼으면 이제 나가죠.”


 최흑오라는 여자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 큰 우산을 펼치고 높은 굽을 신은 채로 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 년 전에 여기서 사진을 찍었다는 저 여자에 대해서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채도가 빠진 듯 한 기이한 눈동자를 지닌 여자를 기억 못 할 리 없다. 하지만 기억은 없고 여자가 왔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컴퓨터에 파일이 남아 있으니까. 도대체 파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억하고자 하는 것, 또는 자주 하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몸이 기억하고 해야 할 것은 몸이 알아서 한다. 분명히 한 달 정도 지나면 나는 모든 파일을 삭제를 했다. 컴퓨터라는 것이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지우지 않았거나 그 당시에 여자가 절대 지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대로 나는 기억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여자의 말대로 나는 기억이 조금씩 소멸되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쥐들에 의해서, 내가 제때에 제대로 태도를 취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최흑오는 나에게 말했다.    


 여자의 말대로 시외버스정류장으로 와서 5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7번 국도를 타는 버스였다. 신용카드는 있고 주머니에도 현금으로 34만 원 정도 있었다. 가방에는 속옷 두 벌과 여벌의 티셔츠와 바지가 있었고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허기가 졌다. 배가 고팠지만 그대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버스는 영덕으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에는 운전사 이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할머니 한 명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또 다른 할머니 한 명이 올라타 있었다.


 나는 맨 뒤의 창가에 가서 앉았다. 할머니들은 그 나이 때가 비슷하고 버스에 사람이 없어서 서로 인사를 할 법도 했지만 그들은 얼굴이 마주쳐도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고 각각 다른 자리의 창가에 앉았다. 어쩌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비슷한 모습에 그만 실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들은 정당하지 않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막아 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최 흑 오 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