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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7. 2021

성룡 영화의 계절

명절 이야기

옛날 포스터는 이미지를 따다 붙인 표시가 난다


밤이 되니 쌀쌀해졌다. 한여름처럼 옷을 입고 베란다 문을 다 열어 놓으면 바다에서(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서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변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며칠 전까지 애처롭게 들리던 매미소리가 싹 사라졌다. 가을인 것이다. 아직 낮의 온도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어서 약간은 더운 감이 있지만 뜨거운 커피가 어제 이전보다 맛있어졌다. 가을이 되면 추석이 있고, 돌아오는 주말도 추석 연휴다. 예전에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성룡의 계절이었다.


대목을 노리고 며칠 지속되는 추석 연휴에 맞춰서 성룡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거나 티브이 특집 방송으로 나왔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빈이 티브이에 나오듯이. 하지만 추석마다 티브이에 나오는 성룡이 진부하다고 해서 어느 추석 명절을 기점으로 성룡이 사라졌다. 성탄절에 캐빈이 사라진 것처럼.


근래에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진을 치고 있기에 성룡과 추석은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추석에 성룡이 편성이 되어도 시청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추석명절에는 성룡이고 크리스마스에는 캐빈이다. 추억의 끈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에 성룡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오락실에 갔으면 보글 보글이라도 한 판 하고 나와야지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면 이상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 분위기는 사람을 과거의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한동안 추억 속에 머무르게 한다. 그건 일상의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일종의 휴지기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 마당이 딸려 있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공터가 있었다. 추석이 오면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항상 청바지를 새것으로 사주었다. 길어서 접어 입어야 했다.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요즘은 바지를 접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명절에도 어딘가로 가지 않고 그저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친구들은 대부분 큰집이나 다른 지역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몇 시간씩 고속도로의 고충을 이야기할 때 부러워했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명절에 어디에도 가지 않는 행복이 크다는 걸 알았고 친구들도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명절 기간에 맞추어 극장에는 새로운 영화들이 선을 보였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명절이 다가오기 전, 그 주의 주말이 가장 설레고 찬란한 시간이다. 극장에는 홍콩영화가 꼭 걸렸다. 학창 시절에 다음 주중에는 추석이 있고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영화를 꼭 보러 갔다. 아직 명절이 오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동안에 극장에 영화를 보는 그 기분, 그 알 수 없는 행복함. 특히 홍콩 영화광과 함께 홍콩 영화를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이불도 얇은 여름 홑이불에서 조금 두꺼운 이불로 바뀌었다.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와 잠이 들 때 이불 면에 발이 닿는 그 감촉이 너무 좋았다. 창문 너머 마당의 화단에서 풀벌레와 귀뚤이 소리가 들렸다. 요즘으로 치면 그건 백색소음이다. 귀뚤이 소리를 들으며 감촉이 좋은 이불에 발을 비비며 잠이 든다. 꽤 근사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억 속 주말은 늘 조용했다.


지금처럼 매일이 시끄럽고 사고가 나는 대 환장 파티가 있는 추석 연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모든 사건사고와 정보가 매일, 매 시간, 매 분 휴대전화로 확인이 가능하니까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것도 볼 수 있어서 예전보다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예전이라고 왜 고부갈등이 없고, 부부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친한 사람들이 배신을 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렇지만 추석이 다가오는 그 전 주중은 조용하면서 북적거렸다. 음식점에도, 시장도, 마트에도 사람들은 북적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흘러갔다. 꼭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 나오는 고요한 골목길 풍경과 비슷했다. 사람들의 걱정이라고는 그 조용함에 묻혀 평온한 주중과 주말, 그리고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추석이 오기 일주일 전, 이때가 제일 기분이 좋은 주일인 것이다. 마당에 나가면 공기부터 달랐고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열고 공터를 지나면 아이들의 어깨 위에 이미 ‘기분 좋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어릴 때라 그런지 어른들의 어깨에도 그 기분 좋음이라는 것이 내려앉은 모습이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학창 시절에 추석이 오기 전 주말 토요일에는 학교가 끝나면 극장에서 홍콩 영화를 봤다. 성룡뿐 아니라 홍금보, 원표, 유덕화, 이연걸, 주성치, 장국영, 주윤발, 매염방, 양자경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보러 다녔다. 예스마담 시리즈 중에 어떤 버전은 서울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만큼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때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없지만 성룡 영화라고 하자. 추석 연휴에 성룡 영화가 극장에서는 새로 나온 영화가 하고, 티브이에서는 성룡의 지난 영화를 했다. 멋진 일이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없으니 성룡이 티브이에 나오면 기를 쓰고 봤다.


추석 연휴 전에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집에 와서 시원한 감촉의 이불을 덮고 누워서 성룡의 영화를 보면서 잠드는 멋진 기분. 밥을 먹으며 매운 음식에 괜스레 오버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웃으며 에에, 뭐가 그렇게 맵냐며, 별거 아는 것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 잠시의 행복함으로 충전을 하고 또 명절이 끝나고 긴긴 일상을 버틴다. 행복은 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은근히 찾아온다. 반면 불행은 무지막지하게 선명히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던 시기였다.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 친구와 있으면 늘 재미있었다.


추석이 오기 전 주말에 극장에 간다. 극장의 분위기는 좋다. 막상 추석 당일보다 그 전 며칠이 더 기분이 좋은 것처럼 영화 시작 전에 들어가서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무엇보다 좋았다. 오락기도 몇 대 있고 바둑이나 장기를 둘 수도 있고 대기실 앞에는 대형 벽걸이 티브이가 있어서 지난 영화가 계속 나왔다. 매점에서 부라보콘을 집어서 대기실에 앉아서 먹으며 대형 티브이에서 하는 지난 영화를 보는 시간은 행복했다.

역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어색함이 주는 친근함

분명 두근두근하는 성룡 영화를 곧 보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기대와 함께 진정 극장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서 좋다. 2층의 극장 대기실은 작은 창문이 있어서 시내의 풍경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뿐이지만 머리통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와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나와 내 친구는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아니다. 아, 친구는 그래도 수학을 잘했다. 수학만 잘했다. 수학만 잘하고 나머지는 못하기도 힘든데 친구는 수학만 잘했다. 매일 붙어 다니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뭐 그런 친구였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갔다.


드디어 성룡의 영화가 시작한다. 극장의 두꺼운 붉은 문이 열리고 우리는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요즘처럼 지정석이 없다. 그저 빨리 들어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끝이다. 문 앞에 대기 타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쪼르르 달려가서 자리에 앉는데 우리는 그렇게 좋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뭐랄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좋은 자리가 어떤지 모를 때였고 맨 앞줄이 안 좋다는 정도는 알았다. 잘못해서 맨 앞 줄에 앉았다가 고개를 꺾어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앉지도 않았다. 약간은 뒷자리나 아니면 아예 맨 뒷자리, 중간에서 약간 옆으로 치우친 자리 정도에 앉았다. 이런 극장이 불과 12년 전 까지도 있었다. 멀티플렉스가 세상의 곳곳에 도래하고 세상을 잡아먹을 때에도 우리는 오래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상영관보다는 극장이 어울렸던 오래된 극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극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햄버거와 킨사이다 캔을 따서 먹으면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성룡의 수많은 영화 중에 어떤 영화였을까. 무슨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용형호제 2로 하자. 성룡의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유쾌하고 재키 찬이라는 이름처럼 재기 발랄하며 영화 속의 주인공 이름도 재키다. 요즘에 영화를 본다면 같이 나오는 조연들에 대해서도 눈이 돌아갔을 텐데 당시에는 그저 성룡의 아크로바틱 한 몸놀림과 발차기와 수준 높은 액션에 그저 영혼을 몽땅 강탈당해버렸다. 입으로 슈욱 같은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극장을 나오면 주중에 명절이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며 신났다. 그리고 그 기분을 하루 동안 죽 끌고 갔다.


주중의 명절을 기다리면서도 빨리 오지 않았음 하는 마음. 그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에 일 년에 한 번 오는 추석 명절은 정말 기다리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추석을 보내기 위해 어딘가로 가지 않았다. 가족만이 조촐하게 보내는 추석 치고는 또 어머니는 음식 장만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추석 전날에 집 안팎으로 가득 퍼지는 전 굽는 냄새. 그건 순전히 어머니 혼자서 추석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 그렇게 음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 음식을 할 때에는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구워 놓은 전을 홀라당 집어 먹는 맛이 좋았다. 친구들은 전부 큰집이나 타 지역에 추석을 보내러 갔다. 그래서 추석 명절 당일이 되면 외로웠다. 새로 산 청바지를 자랑하고, 그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 2021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요즘 추석 명절도. 외롭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예전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가족들이 있고 명절은 가족들과 보내지만 추석의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이 달라졌다. 그 달리전 것에는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것이 끼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추석의 기분이라는 건 별게 아니다. 외롭지 않은 것, 가족이 모여 있으니까 행복 충만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촉감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요하게 명절은 흘러간다. 하지만 살짝 벌리고 보면 너무 시끄럽고, 서로 열을 내고, 당장 내 생각과 다르면 입으로 독침을 뱉어낸다. 우리 집 앞은 바다가 있어서 명절 연휴 중에 조카와 나가서 컵라면을 하나씩 먹곤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 쓰고, 벗었다가 다시 썼다가, 거리두기와 함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일단 피하게 되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지 않을 것 같다.

명절이면 바닷가에서 컵라면 먹는 우리만의 행사를 코로나 이후 할 수 없게 되었다


성룡도 나이가 들어 한국의 명절에 성룡의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는 일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감염병 시대라서 극장 자체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티브이를 틀면 채널이 백 개가 넘고 영화는 매일 수십 편씩 나온다. 선택의 장애를 겪는 일이 허다해졌다. 그렇다 해도 명절이면 더빙판의 성룡 영화가 공중파를 통해 밤 10시에 했으면 좋겠다. 발에 닿는 기분 좋은 이불을 감촉을 느끼며 성룡의 영화를 보며 밤을 까먹으며 보고 싶다.

아마 무슨 전시회에서 학창 시절의 나와 친구



https://youtu.be/zaUpOmVRpe0

유튜브 쑴씨네, 전설의 성룡 코믹 액션 영화! 용형호제 2 비룡 계획 : 아시아의 인디아나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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