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
로마의 휴일을 보면요, 앤이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려고 하다가 멈칫하잖아요.
집어넣으면 정말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손목이 없어질까 봐 말이죠.
그러다가 조 브레들리가 손을 집어넣고 거짓으로 아악 할 때, 그때 앤이 너무 놀라서 소리를 치며 브래들리의 손을 막 빼잖아요.
그 장면은 앤이 정말 귀여워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조가 거짓말이라고 하니 놀라면서 안도의 표정, 그 표정은 오드리 헵번 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앤은 조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헤어져 궁전 같은 곳으로 돌아왔을 때 굳은 표정으로 바뀌잖아요.
예쁜데, 예쁜 얼굴인데 거기에서 어떤 무엇인가가 빠져버렸어요.
그건 아마도 감정인 거 같아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을 겪으며 사람들에 대한 이 알 수 없는, 복잡하고 기분 좋은 감정 말이에요.
그건 아마도 희로애락을 말할지도 몰라요.
앤은 그동안 여러 감정에 대해서 다양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지막에 추억의 사진을 건네받잖아요.
거기 사진을 보면 앤 공주가 살면서 정말 나올 수 없는 표정이 찍혀 있잖아요.
그 기분 좋은, 그 황홀한, 그 미칠 것 같은 흥분의 표정이 사진 속에 있었어요.
조와 친구는 그 특종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지 않고 앤 공주에게 추억의 선물로 주잖아요.
만약, 정말 만약인데, 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데요, 원작을 쓴 트루먼 카포티는 홀리 역에 메릴린 먼로를 추천했다고 해요.
메릴린 먼로의 홀리는 어땠을까.
메릴린 먼로가 했어도 좋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릴린 먼로가 어쩌다가 섹시스타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어요.
아 만약, 정말 만약에 앤 공주가 다시 궁을 뛰쳐나와 로마의 작은 2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와 사랑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생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아갔을까요.
동화를 보면 끝은 늘 행복하게 끝나잖아요.
뭐 신데렐라도 그렇고 백설공주도 그렇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사실 더 궁금하거든요.
왜 이적이 부른 노래 중에 그런 노래가 있던데 말이죠.
신데렐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어요.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빨래며 집 청소며 매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거거든요.
앤 공주는 좀 다를까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은 단연 앤 공주잖아요.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생각나요?
이발사가 그러잖아요.
요만큼?
그러니까 앤 공주가 점 더 짧게.
그러니까 또 요만큼?
아니요 더 짧게.라고 하니까 이런 머릿결을 잘라내는 것에 이발사가 용납이 안 되어서 재차 되묻곤 하잖아요.
그리고 결국 짧게 자르잖아요.
머리를 앞으로 내렸을 때 그 머리카락을 살짝 걷거든요.
그때 앤의 표정을 봤어요?
오 정말 예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요.
눈을 이렇게 치켜뜨고 자신도 궁금하다는 듯한 그 맑고 순한 표정 말이에요.
아이들에게서나 나올 것 같은 그 표정을 앤 공주가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앤 공주가 조와 결혼을 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융화가 좋잖아요.
그렇게 서글서글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다 가진 사람’은 몇 없을 것 같아요.
마치 재벌의 셋째 딸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다니는 것과도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장면은 후에 나오는 영화에서 과거로 가거나, 미래로 간 여주인공이 그곳의 물정을 몰라 어리숙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들을 나눠주는 장면으로 바뀐 것 같아요.
로마의 휴일에서도 앤은 조에게 그러잖아요.
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다 하는 거냐고? 조는 왜 이타적이냐고?
하지만 말이에요, 앤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물론 조의 집에 청소를 하러 온 아주머니는 심통난 시어머니처럼 앤을 나무라지만 말이에요.
앤이 스쿠터를 타고 우당탕탕 사람들과 한 바탕 소란을 피운 다음 경찰서에 끌려가서 서 있을 때 표정 봤죠?
아아, 정말 뾰루퉁한 얼굴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같은 표정 말이에요.
정말 사랑스러워요.
앤이 마지막에 사진을 들고 헤어질 때 조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해요.
감정과 처지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는 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앤이 사라지고 조가 혼자서 쓸쓸하게 나오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아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까요.
노팅 힐에서는 그게 싫었는지 ‘절대’라는 의미를 깨버리고 두 사람을 같이 있게 하지만 앤 공주와 조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잖아요.
앤과 조는 알고 있었어요.
매일이 따분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이 미치도록 싫증 나지만 이런 생활이 무탈하게 보내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요.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프레디 크루거' kds941024 https://blog.naver.com/kds941014/222317232094
혼자 생각이지만 로마의 휴일은 푸른 하늘의 오래전 앨범, 3집의 노래들을 떠올리게 한다. 디제이가 로마의 휴일 멘트를 하는 중간중간 사이사이 푸른 하늘 3집의 노래를 틀어 주면 참 좋을 텐데.
정정: 트루먼 카포티의 ‘로마의 휴일’이 아니라 ‘티파니에서 아침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