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12. 2021

안개꽃 추억으로

-이문세

상념에 휩싸인 채로나 지난 날처럼 그 꽃집을 찾았지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강물은 어디선가 날아온 빛을 받아 실루엣이 반짝였다. 그 실루엣 사이로 오리들이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하듯 줄지어 한 방향으로 떠 다녔다. ‘그대 저산 멀리 점 되어 날으는 새들같이 떠났지’ 이문세가 노래를 불렀다. 유약한 시절, 사색과 상념의 대부분은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보냈다.


‘하얀 꽃잎 가득 너의 눈길, 잃어버린 추억 속에 쌓여 아리운 환상인 것을’ 이문세가 목이 터질 것처럼 고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문세가 노래를 부르면 흐린 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그림이 된다. 안개꽃 추억으로 들어간 사람들과 그림자를 빼앗겨 버려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문세의 노래를 듣고 이곳으로 나와서 몸을 흔들었다. 마치 바람에 보답하는 갈대처럼 몸을 움직였다.


잿빛 구름 가득한 흐린 날이 다음날까지 지속되더니 이내 회색 비를 쏟아냈다. 권태와 단조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떤 이가 그런 풍경에 반항이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담배연기를 뿜어 잿빛 공간에 틈새를 만들어내지만 이내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틈새는 메꿔졌다. 오전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안개꽃 추억으로’가 흘러나왔다.


이문세가 고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내 맘을 쉬게 해 달라고, 잃어버린 추억 속에 쌓이고 싶다고 이문세는 절규하듯 노래를 불렀다. 마치 빗방울처럼 노래를 불렀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져 창문에 붙는다. 창문에 붙어서 흘러내려 떨어지기 싫다. 이대로 붙어서 창 안에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언제까지고 보고 싶다. 근데, 그런데 하늘 위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등에 붙으면 점점 밑으로 흐른다. 나는 흘러내리기 싫은데 무게, 무게 때문에 계속 밑으로 밑으로 흐른다. 땅에 떨어지고 나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이문세는 인간승리를 해냈다. 한계를 극복했다. 가끔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타이틀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도전하고 정복하는 모습들. 얼굴이 톰 요크처럼 일그러질 정도로 힘듦을 참아가며 이겨내는 모습을 그동안 왕왕 봐왔다. 그들의 인간승리, 인간의 한계를 넘는 모습은 감격적이지만 티브이에 나오는 그런 일들만이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고 볼 것인가.


예전에 글을 쓰기 위해 갑상선을 제거한 30대 초중반 남녀 네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라고 하지만 나는 인터뷰어로서는 재능이 없기에 그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갑상선의 수술을 받았고 그 후의 생활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있던 갑상선이 없어지면 하루에 8시간씩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활동을 해도(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몹시 피곤하다. 그 피곤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등에 쌀가마니 몇 포대를 둘러 맨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거기에 눈이 몹시 탁해진다. 슬픈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성과 정체성에 고민을 하게 된다. 주변에 스며들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피곤이 덮치면, 그게 갑상선이 붙어 있을 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고 ‘나는 젊은 나이에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같은 자기 비하를 하게 되며 결국 자기 멸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무너진 정신은 모래성 같아서 다시 쌓아 올리기 너무 힘들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비록 나는 갑상선을 제거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준 덕분에 나는 그들의 힘듦에 아주 조금 다가갈 수 있었다.


근래의 이문세를 보면서 이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능력, 슈퍼맨이나 내는 그런 초능력. 이문세는 갑상선을 두 번이나 수술했다. 그 말은 노래를 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체력이 바닥이 난다. 내가 조깅을 세 시간 한 것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24시간 꼬박 걸어 다닌 것처럼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에너지가 완전히 소거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세는 공연을 해서 한 시간 이상 노래 몇 곡을 예전처럼 부른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 사람은 노래가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그리고 그 노래를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얼마나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도저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의 몸으로 한계를 넘어 버린 것이다. 이문세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문세가 노래하는 그 앞에서 그만 오열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문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어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노래를 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로 초능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근래의 이문세를 보면, 보고 있으면 경외심이 든다. 산을 타고 식단 조절을 하고 맑은 공기를 찾아다니고 무엇보다 절벽 밑으로 떨어졌던 정신을 끌어올린 것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한계를 넘어 버린 것이다. 이문세가 노래를 부르면 세상이 행복해진다. 비록 잿빛 하늘이 며칠 계속되는 우울한 날이라 할지라도. 그건 노래를 부르는 이문세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문세가 안개꽃 추억으로 들어가 노래를 부른다. 나 지난날처럼 그 꽃집을 찾아서 하얀 안개꽃 잎에 입맞춤하며 떨리는 그 마음으로 이문세가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비록 빗방울이 되어 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땅으로 꺼져 사라질지라도 창에 붙어 있는 동안 이문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한 일은 찾으면 매일 있다. 지금 보이는 저 풍경이 잃어버린 추억 속에 쌓여 어리운 환상인 것이다.



안개꽃 추억으로 https://youtu.be/RwwSvfmsA4Q


매거진의 이전글 냄새는 방울방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