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다시 소설로
새벽에 눈을 뜨니 아직도 에드워드가 들어오지 않았다. 겁이 났다. 막상 이 큰 호텔에 혼자 잠들어 있으니 불안했다.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은 싫다기보다 무섭다. 검은 어둠에 나의 몸이 조금씩 먹히는 기분이 든다. 에드워드도 어쩌면 나와 비슷할지도 몰라.
호텔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에드워드를 찾았다. 엘리베이터 보이, 데니스가 나를 에드워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에드워드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휑한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슬픈 등이었다. 에드워드는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실은 누구도 에드워드의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돈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이다.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실패를 모르는 이 남자가 실수하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에드워드는 비어있는 식당에 남아서 정리하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좀 피해달라고 했다. 에드워드는 나를 피아노 위에 올렸다. 내 발이 닿자 건반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가 키스를 하려고 했지만 나는 피했다. 키스를, 키스를 해 버리고 나면 나는 정말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에드워드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씻지 않은 에드워드의 살갗에서 외로움의 냄새가 났다. 그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차가웠다. 나는 그를 보듬어 주었고 그는 나에게 들어왔다. 멋지게 놓여있는 피아노는 에드워드와 나의 침대가 되어 주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에드워드는 일찍 일어나 있었다. 그는 카드를 주며 쇼핑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살롱의 불친절을 덮어쓴 차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하찮게 본다. 내가 푸념을 늘어놓으니 에드워드는 나를 데리고 쇼핑을 같이 갔다.
나에게 모두 불친절하다구요!
괜찮아, 그들은 신용카드에겐 아주 친절해. 라며 씹고 있는 껌을 먼저 뱉어야 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당장 길거리에 신나게 뱉어버렸다.
에드워드는 나를 데리고 고급 살롱으로 들어갔다.
매니저를 불러 “이 예쁜 아가씨 보이죠? 이 숙녀만큼 예쁜 옷이 있소?” 에드워드는 매니저에게 지금부터 우리에게 아부를 해야 할 거라며 아부 정도를 보고 이곳에서 돈을 왕창 쓸지 본다고 했다.
에드워드는 마법사였다. 살롱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옷과 모자를 보여주며 스타일을 창출해주었다. 매니저가 에드워드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을 때에도 그는 내가 아닌 (나를 가리키며) 저 아가씨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내 앞에는 마법이 계속 이루어졌다. 에드워드는 전화를 받고 일하러 가면서 나에게 쇼핑을 마저 하도록 했다. 이건 에드워드에게 잘 어울리겠다고 내가 손짓을 하면 매니저는 매고 있는 넥타이도 풀어 주었고 피자도 음료도 코앞으로 갖다 주었다. 살롱에는 로이 오비슨이 부른 ‘오, 프리티 우먼’이 흘러나왔다.
Pretty woman, i don’t believe you
You’re not the truth
No one could look as good as you
나는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쇼핑을 하고 나서 어제의 나를 내쫓았던 살롱으로 갔다. 그 콧대 높은 여자들에게 복수해주고 싶었다. 자 봐라, 어제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이 너희들 실적이 되었을 텐데 흥. 나는 보란 듯이 통쾌하게 그 콧대를 납작, 누르고 나왔다.
[호텔로 들어와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비비안의 뒷모습을 본 톰슨은 마치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웃음을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욕조에서 에드워드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쳐있는 에드워드의 넓은 가슴에 거품을 내어 문질러 주었다. 에드워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마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