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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7. 2020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날

시 이고픈 글귀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날

.

.


사람이 시간을 들여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처음 보던 날


내 눈에 들어온 건 발이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성기부터 몸 안으로

썩어 들어가지만

죽기 직전의 발은 이미 생명의 온기라고는 

전부 빠져나가 있었다


생명은 실은 

발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고기비늘 같은 각질과 검게 벌어진 

발바닥 사이의 살갗은 애석하게도

죽음을 먼저 맞이하고 있었다


발톱이라 불러야 하는 자리에는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슬펐던

때로는 아팠을

흔적이 까만 추억처럼 말라붙어있었다


죽기 직전의 발꿈치는 

세월에 짓이겨져 쪼그라들어 말려 있었다

이제 몸뚱이 한 번 받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발은

꿈쩍도 않는다


오랜 시간 진열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배춧잎 같은 각질은 발의 모든 부분에서

눈처럼 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저 많은 각질을 모아두면

썩지 않고 있을까


발에게 필요한 건 영원한 어둠

양말과 신발 속에서

홀대받았던 엄혹한 시절


발은 생명의 모든 잔향을 각질로 떨쳐내고

온전한 얼굴로 밤의 끝으로,

이제부터 중력과 싸우지 않아도 되니 쓸 쓸 해 지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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