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an 22. 2022

방파제에 나오면

바닷가 이야기

화이트의 암부와 명부가 다 표현됐다 필름이라 가능했을지도



오늘, 날이 조금 풀렸다. 햇살이 가득한 날이다. 이런 날 해안을 벗어나 방파제에 나오면 바다는 하늘과 동시에 거침없이 반짝거려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눈으로만 쫓을 수 없어 카메라를 들어본다. 백 년 후에도 아마 하늘과 바다는 이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니면 완연하게 다르거나. 어떻든 그때 우리 모두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굉장히 고요한 아침이다. 잿빛이 낀 맑은 하늘과 미동 없는 바다와 차갑기만 한 겨울의 날카로움을 뚫고 온화함이 파고들어 마치 시간이 멎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진하면서 옅은 겨울의 냄새는 아무래도 올 들어 처음인 것 같다. 햇빛이 가득한 방파제에 있으면 내내 따뜻하여 눈을 가늘게 뜨고 시간의 흐름도 잊을 수 있다. 대기를 따라다니는 냄새가 낯설지 않아서 기시감이 든다.


시리고 차가운 겨울 속을 젤리처럼 벌리고 나온 선물 같은 날이다. 그러나 북적이던 바다에 사람들이 빠져서 바다는 어쩐지 슬퍼 보인다. 내 눈에는 바다의 슬픔이 어렴풋이 보인다.


조금 따뜻해진 겨울의 바다에 나오면 노인들이 산책을 한다. 그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산법으로 시간을 따지면 노인들의 시간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지나가야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고 하루에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얼굴을 늘 하고 있다.


바다는 나에게, 끝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잔혹한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방파제에 서서 미동 없는 바다에 고집스럽게 돌을 던졌다. 바다는 돌을 맞고도 아프다는 내색도 없고 표시도 나지 않았다.


여기에 서 있으면 역사상 가장 멋진 너와 함께 서 있었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어이없지만 우리는 여기 서서 윤시내의 고목을 들었다. 윤시내의 노래가 이렇게 멋졌어요? 우리나라 가수 중에서는 블루스를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이지 않을까. 윤시내의 고목은 블루스적이다. 방파제의 바다도 블루스적이다. 역동하지 않고 생과 사의 경계도 알 수 없다. 그저 블루스적인 모습과 블루스적인 냄새를 낼 뿐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건 블루스적인 윤시내의 고목뿐. 역사상 가장 멋진 다리와 발목을 가진 너는 바닷바람의 무서움에도 내 옆에 붙어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그때, 무심코 흘려버린 그때, 잃어버린 그때, 잃어버린 그 시간을 붙잡으려 방파제에 나왔다.




윤시내의 고목 https://youtu.be/C-ZWHdSgrdA

역사상 가장 멋진 블루스

 






매거진의 이전글 마가렛 버크 화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