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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1. 2022

유년의 기억

바닷가에서 1

바닷가에서


예전에는 명절 기간에 일행과 함께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 코로나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와서 바닷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바닷가에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며드는 건 좋다. 영화 ‘안경’을 보면 스며드는 것에 대해서 잘 나온다. 영화가 이래도 돼? 할 정도지만 영화에 스며들어 버리고 만다. 사람이 풍경에 스며들어 하나의 배경이 된다. 내 모습도 누군가의 배경이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집 근처의 바닷가는 모래사장이 있는 해안과 방파제뿐이라 여기서 조금 떨어진 포구 쪽으로 간다. 거기는 아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기 좋다. 누군가 저기서 추운지 이소룡의 스텝을 밟으며 허공에 대고 펀치를 날리고 있다. 바닷가에는 냄새가 있다. 바닷가 냄새는 계절에 따라 다르며, 비가 오는 날이나 습기가 많은 날, 흐린 날 다 다르다.


몇 해 전에는 이곳에서 일행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건방지게 누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를 읽었었다. 살인자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무척이나 불쾌하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이야기. 무엇보다 미국식 이야기. 불쾌함을 벌릴수록 문학이란 꼭 따뜻하고 온후함을 주는 것이 문학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좀비 영화 중에서 재미있게 봤던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네빌은 홀로 살아있다. 여기의 세계관 속 좀비는 낮에는 뱀파이어처럼 나다니지 못한다. 밤이 되면 출몰하는 좀비들 때문에 네빌은 욕조에서 샘을 끌어안고 가만히 밤을 지새운다. 낮이 되면 네빌은 자유해서 모든 물품을 가질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완전히 자유하지만 마네킨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네빌은 외롭다. 오로지 곁을 지켜주는 샘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후에 샘은 좀비 개들에게 물려 좀비가 되려 할 때 네빌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그 세계관 속 네빌은 어쩌면 좀비 떼들과 상대하는 것보다 이 망망한 세계에서 홀로 지독하게 고독한 외로움을 더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문을 열고 나가면 밖에는 사람들이 왕창 다니고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없고, 내 편도 없고, 가족이 있어도 내가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느끼면 고립되어 외롭다고 느낀다.


이렇게 걷다 보면 똥강아지들을 본다. 어미는 묶여 있지만 새끼들은 풀어놨는데 사람만 보면 신기하고 좋아서 우르르 달려든다. 그 짧은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댄다. 내가 어릴 때에도 집 마당에 개를 키웠다. 강아지 이름은 깜순이. 깜순이 집에는 잠에서 갓 깨어난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막 일어났다. 깜순이 새끼들이 집을 나와 마당을 뛰어다니고 화단을 망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잘못 건드린, 처음 본 사마귀의 당랑권을 받은 한 마리의 새끼 강아지는 앞발로 사마귀에게 덤비다가 혼비백산을 한다. 아버지가 마당을 나가면 나머지 네 마리가 뒷다리로 땅을 딛고 대문에 매달렸다. 얼굴만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사라지면 동시에 몸을 들려 마당을 경기장 삼아 지치지 않고 레슬링을 한다. 새끼 강아지 입에서는 기분 좋은 비린내가 머물러 있다. 그러다 우유를 데워 놓으면 자석처럼 머리를 맞대어 얼굴을 박고 까만 코가 하얗게 되면서 그릇을 핥는다. 깨끗하고 기분 좋은 비린내가 새끼 강아지들 입 안에 가득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끼 강아지들은 또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어린것들은 뭐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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