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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0. 2022

고요한 하루가

지나간다



창밖으로 파도의 소리가 들리지만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워서 트루먼 카포트의 ‘차가운 벽’을 좀 읽다가 살이 맞닿으면 서로 살을 비비고 잠이 오면 잠이 들었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잔뜩 사 넣은 맥주를 꺼내서 마셨고 다시 누워서 같이 책을 좀 읽었다. 음악 같은 것도 듣지 않은 채 창밖으로 들리는 바다의 소리를 배경 삼아 차가운 벽을 읽었다.

 

17세에 쓴 단편 소설 맞아요? 문체가 묘하군요.


카포트는 자신의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영화로 확정되었을 때 주인공으로 메릴린 먼로를 그렇게 추천했데.


메릴린 먼로가 했어도 꽤 멋진 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또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맥주를 마시고 서로 꼭 끌어안았다. 좋은 냄새보다 살갗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좋았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냄새였다. 빨간 점들에 의해 발가락 행진곡이 침대 위에서 연주가 되었고 나른한 오후를 왈츠를 추는 먼지로 수놓았다.

 

우리 이제 나가요. 스무 시간을 호텔 침대 위에만 있었어요.

 

고요한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은 봄날이라 여기저기에 봄의 정령이 눈치를 보고 있다. 이상하게 아직 긴 팔을 입어야 하지만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끝 봄의 계절을 파고들었다. 아직은 봄이야, 라는 말 한마디에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놓으면서 동시에 조급함이 든다.

 

우리는 눈치 보는 봄의 정령이 가득한 바닷가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조금 걸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하나씩 마시고 사진을 몇 컷 더 찍고 벤치에 앉았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하루다. 고요한 하루가 지나간다.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 10월 4일 https://youtu.be/_T57aFgIq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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