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나 시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프로작가의 글이라고 해서 모든 글귀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프로작가의 글이 아님에도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그렇게 만나는 글은 느닷없다. 브런치 작가 중에 임이나 님의 글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는데 이성복 시인의 시도 화악 떠오르고, 내가 너무나 좋아해 마지않던 박정대의 슬라브식 사랑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에 푹 빠져 있었던 때가 떠오른다. 유희경 시인, 박정대 시인, 김소연 시인, 이성복 시인, 최승자 시인, 황인찬 시인, 한강 시인의 시에서 허우적거릴 때. 짧은 문장 안을 살짝만 벌려보면 긴 서사가 있어서 생각하고, 상상하다 보면 한 편의 긴 소설을 읽어 버린 듯한 기분. 그런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시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타는 목마름이다. 김영하도 하루키도 어쩌면 시에 대한 갈망이 있지 않을까. '해변의 카프카' 속에는 해변의 카프카 노래 가사가, 시가 되어서 드러나고, 김영하의 짧은 소설 살인마 병수의 이야기 '살인자의 기억법'도 긴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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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어려우니
시는 쉽게 적고 싶습니다
만
시가 이리도 어려우니
간단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사는 것도, 쉽게 시를 적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매일 읽고 있지만 생각해보니 근래에 시를 잘 읽지 않았다. 시집 한 권을 너덜너덜하게 읽었던 적이 불과 1, 2년 전인데 최근에는 소설책과 좋게 말하면 인문학 책 - 쓸데없는 책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이동을 할 때 조금씩 읽고 있다. 그러니까 1, 2년 전에 마음을 다해서 시를 읽고 시에 스며드는, 시며 들어 읽었는데 근래에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변명 같지만 코로나의 여파도 있고. 어머니도 코로나로 며칠째 고생하는데 아직 나는 걸리지 않고 있다. 나는 백신도 1차 밖에 맞지 않았고 코로나가 걸리면 몹시 고생을 할 것 같은데 아직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 사경을 헤매거나 아파서 골골거리고 있다. 나는 아직이다. 그래서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그런 와중에 이 글이 나를 사로잡았다. 왜 그런지 제대로 된 설명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사로 잡혔다. 그래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사진을 편집해서 이미지화시키고 그 속에 글귀를 삽입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출력을 해서 책갈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글에는 제목이 없어서 작가의 이름을 따서 ‘임이나 시’라고 제목을 붙였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앞뒤의 조금은 긴 글을 볼 수 있다. 마음이 불안할 때 그것을 조금 잊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이 되면 글에서 위안을 받는다. 아마도 내게 그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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