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천에 폭설이 내렸다. 순진하게도 서울에서 입었던 자켓을 그대로, 안에는 얇은 티셔츠를 입고 왔다. 난 이렇게 늘 대비없이, 요령없이 백치처럼 인생을 산다. 그런 나는 마치 나비가 된 기분이다. 이름도 모르는 버려진 강물 위를 초겨울 날, 뜨거운 한 줄기 빛에 의지해 홀로 가냘픈 날개짓을 유지하는 그런 나비. 그렇지만 그 외딴 곳, 초겨울 날씨에도 나비는 처연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냘플지라도 얼어버릴 정도의 추운 감각을 온 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생의 한가운데에 그 자체로 생기있게 존재하므로. 인간의 생이 아름다운 것도 이처럼 우리가 늘 대비되어 있지 않고, 부족하고 때론 처연할 지라도 그것을 능동적으로 용기있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그 안에서 부단히 사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오늘은 부드럽고 특별한 핸드드립 보다 그냥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에스프레소를 넣은 아메는 드립보단 맛이 강하고 투박하다. 특별함보단 때로는 투박함에 이끌린다. 그 투박함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3. 훌륭한 맛의 커피 집을 안다는 것은 꽤 큰 행복이고 우연이다. 나에겐 이 행복과 우연이 소중하다. 흔하지 않기 때문이고 나는 커피가 주는 미각적 쾌락을 찬미하니까.
4.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춘천은 처음이다. 문득, 춘천의 사울레이터가 보내줬던 눈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사울레이터처럼 아무 의도없는 시선으로 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우울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사는 게 이렇게 눈이 오듯이 조용히 점철되듯 흘러간다.
5. 눈은 나무를 사랑했다. 그래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제 영혼을 차곡차곡 늬었다. 그리하여 가지마다 풍성한 목련이 개화하였다. 새하얀 겨울 날, 사랑의 세계가 펼쳐졌다. 비가 오면서 꽃잎이 떨어지듯 쉽게 녹아버리고 있어서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