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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7. 2022

한 획을 긋고는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른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의 이 시는 늘 내 주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문득 튀어나온다. 자유롭고 싶다고 하늘을 보고 외치나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면 또 불안해할 뿐이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계획 하에 짜인 여행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자유 자유 외치지만 순수한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하고 두려워 몸을 벌벌 떨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자유롭고 싶다며 저 달이 떠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 사람은 늘 머리에 뾰족하고 긴 칼이 들어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찌른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삶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면, 저 하늘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면 두통도 고통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 사람은 버릇처럼 말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들여 달은 차오른다. 어제는 밀사의 눈초리 같았는데 오늘 보면 조금 차 올라 있고, 내일이면 오늘보다 조금 더 차오를 것이다. 달은 저 위에서 그렇게 고독하게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달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달을 닮았다.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손을 뻗어도 절대 닿을 수 없다.


달은 말했다. 루를 사랑했던 릴케처럼,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던 단테와 같이, 잔 뒤발에게 목숨처럼 빠져들었던 보들레르처럼, 자야를 너무나 사랑했던 백석처럼 여기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거짓말처럼 달은 매일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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