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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1. 2022

친밀한 고통


일 년 전 오늘이 생각난다. 일찍 피었다가 금방 다 떨어져 버린 벚꽃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오히려 활짝 핀 벚꽃은 불안하다. 행복하면 이 행복이 언젠가는 깨지기에 불안해진다. 그래서 불행하기보다 덜 불행하기를 매일 진심을 다해 바라고 있다. 봄은, 특히 사월은 불안이 모든 곳에 도사리고 있다. 온통 화려하고 찬란하고 새와 벌 대신 꽃들이 하늘을 떠돌아다닌다.


예전에 애써 벚꽃놀이를 가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일행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얼마나 힘들었던가. 한 곳에 머물러 구경을 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힘들어하는 것일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자파의 술수에 속아서 모두가 벚꽃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일 년 만에 기시감을 느낀다. 일 년 전에는 쓰레기의 찌꺼기가 몸속 어딘가에 계속 쌓이는 기분이었는데 요즘의 나는 찌꺼기가 몸속에서 썩어가는 것만 같다. 일 년 동안 쌓인 찌꺼기가 분해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다 썩고 나면 가수분해가 되던지 그대로 터지던지.


4월이 되면 이것이라고 확실한 것에도 태도를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태도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것’이라는 글자를 꽤 많이 사용했다. 역시 그것은 나의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태도라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태도에 따라서 그 뒤의 일들이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태도는 무엇보다 확실하게 취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까지 수준 낮은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몸속의 그것이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가 일 년 전에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 냄새를 계속 맡고 있다 보니 그 냄새가, 그 악취가 나의 것, ‘나’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에 취해 버리는. 어쩌면 나는 좋은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후각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 이렇게 한 계절이 죽음에 이르려고 한다. 인간실격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이튿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관습을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커다란 환락을 피하기만 하면, 자연히 커다란 슬픔도 오지 않는 법이다. 앞길을 가로막는 돌멩이를 두꺼비는 우회하여 지나간다’라는 문장이었다. 한창 우울할 때 읽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때는 오히려 우울함을 드러내서 더없이 우울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돌멩이 하니까 나는 한때 돌멩이 같은 인간이 되고자 애썼다. 돌멩이는 볼품없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그런 인간이라면 불안에서 좀 더 떨어져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돌멩이를 닮은 인간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신발, 좋은 차, 좋은 옷도 좋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글만큼 좋은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불확실하지만 무사히 지났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꿈을 꿨는데 꿈이 아니었어, 라는 토토로의 대사를 지난번에도 썼는데 지금도 역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꿈이고 꿈같은 시간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toto의 리아를 듣자. 듣고 또 듣자 https://youtu.be/WLiTySOAg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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