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내 먹었던 라면은 안성탕면이었다. 나는 오뚜기 라면이 좋았는데 아버지가 안성탕면을 늘 집에 사놓아서 아무래도 있던 라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좀 우습지만 친구의 집에 가도 다른 라면에 비해 안성탕면이 선반에 월등하게 많았다. 그래서 안성탕면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학교 앞 강원 분식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라면도 안성탕면이었다. 거기 이모는 늘 위에 고춧가루를 뿌려 주었는데 나는 고춧가루를 빼 달라고 해서 먹었다. 분식집의 라면은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보다 10배는 맛있었다.
주말에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의 누나가 있으면 누나가 라면을 끓여 주었다. 얼굴이 꼭 강수지를 닮았던 누나는 라면에 파를 많이 썰어 넣어서 끓여 주었다. 라면만 끓여서 먹지 말고 파도 많이 넣어서 먹어야 해.라는 다정한 말을 하며 안성탕면을 끓여 주었다. 라면에 계란과 파가 많이 들어가면 나는 맛이 있는데 파에서 나오는 조금은 달달한 맛과 함께 5개 이상 라면을 끓이면, 끓여서 먹는다는 맛보다는 삶은 쪽에 가까운 맛이 그 라면의 맛이었다. 뭐 어쨌거나 친구들과 한 밥상에 둘러앉아 영화를 보며 먹는 라면 맛은 최고였다. 그때 우리는 어른들 몰래 야동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면 재빠르게 다른 화면으로 전환하는 건 연습으로 인해 잘했다. 그러나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모두가 바지 앞섶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야 했다. 아마 어른들은 눈치 못 챘겠지. 그럴 거야. 아들의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던 친구 어머니는 방에서 빨리 나가지 않고 이것저것 질문이 많았고 라면 말고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라고 했고, 친구 누나는 빨리 라면 먹여서 집 밖으로 내쫓아서 사춘기 냄새를 없애려 했다. 입으로는 라면을 먹고 뇌와 시선은 야동으로, 신체는 신체대로 반응을 하는 인간이란 참.
그렇게 안성탕면을 주로 끓여 먹었다. 라면을 끓일 때 안에 넣어봐야 계란 정도였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하면서 안성탕면은 멀리하게 되었다. 라면의 종류가 많아졌고 골라 먹는 재미도 늘어났다. 라면에 식초를 넣어서 먹기도 했고, 된장을 풀어서 먹기도 했다. 아주 매운 라면에 토마토를 숭덩숭덩 잘라서 끓여서 먹기도 했다. 기가 막힌 맛이었다. 삼겹살을 구워 넣어서 먹기도 했고, 먹다 남은 후라이드를 넣어서 같이 끓여 먹기도 했다. 라면은 어떻게 먹든 맛있었다. 그러다 보니 안성탕면을 기본적으로 끓여 먹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라면을 끓여 먹을 때는 항상 옆에 간 마늘과 후추, 그리고 식초 내지는 촌에서 받아온 고춧가루가 있었다. 라면에 갈아 놓은 마늘을 넣으면 맛이 확 달라진다. 아주 풍성해진다. 마치 무슨 탕이나 찌개를 먹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부대찌개라면도 나오고 찌개 라면에 햄과 소시지를 넣어서 먹으니 역시 맛있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안성탕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것저것, 다른 라면을 여러 방식으로 먹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덮친 그 해 4월에 큰 이모의 상을 치르게 되었다. 처음 겪는 감염병 때문에 나라가 엉망진창이었다.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그 당시 포항은 난리도 아니었다. 큰 이모 장례식을 포항에서 했다. 그 장례식장에 두 사람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 당시 경조사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감염병 방역법으로 금지가 되었다. 그래서 두 장례식에는 가족들만 오롯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족들만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그때는 아직 초기라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나는 라면을 주문했다. 그때 라면이 그냥 기본적으로 라면만 끓여서 나오는 거였다. 먹었는데 아, 하는 맛이었다. 라면의 맛이었다. 간 마늘이나 뭣도 들어가지 않고 라면이 가지고 있는 그냥 라면의 맛에 놀랐다.
근래에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안성탕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안성탕면보다 맛있는 라면이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안성탕면을 찾게 되는 건 아무래도 그리운 맛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학창 시절에 그렇게 먹었던 그 맛. 안성탕면은 정말 그리운 맛이었다. 어느 순간 이제 안성탕면은 맛이 없어, 훨씬 맛있는 라면이 많은데 왜, 하면서 눈을 돌렸지만 결국에는 돌아와 버렸다.
맛있는 라면은 많다. 하지만 뭐랄까 맛있는 음식이 흘러넘치는 요즘,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눈을 돌리면 도처에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기억하고 있던 안성탕면을 먹어보니 그립던 냄새, 그립던 촉감, 그립던 시간, 그립던 소리까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고작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뭘 그런 거창하게,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고작 요만큼 작은 것에 마음이 기울고 작은 것에 싸우고 행복해지며 상처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 작은 행복이 계속 이어진다면 인간의 생이라는 게 거대한 구멍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안성탕면에 대해서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지금은 믿는 종교가 없지만 중학교 때 교회를 다녔다. 어쩌다가 믿음이 없는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중학교 때에는 매주 착실하게 교회에 나갔다. 그리고 교회에서 착실하지 않게 선생님 말도 잘 듣지 않고 기도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도망을 갔다가 누나들을 괴롭히려고 교회의 어딘가에서 꿍꿍이를 하곤 했다. 중학교 때에는 장난이 심해서 어른들에게 혼나기를 여러 번이었다. 스테이플러의 스테플러심을 꼬아서 지뢰를 만들어 누나들이 앉는 의자에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쪽저쪽에서 아야,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리곤 혼이 났다.
교회 앞에는 작은 분식집이 있어서 우리는 그 분식집에서 라면을 자주 사 먹었다. 그 집도 안성탕면으로 라면을 끓여 주었다. 라면을 먹으러 가면 중학생 주제에 연애를 하던 기범이가 진영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안성탕면 한 그릇을 놓고 꽁냥꽁냥 하던 꼴베기 싫던 모습이 떠오른다. 라면이 불어서 국물을 다 빨아먹었는데도 둘이 서로 얼굴을 보며 좋아 죽고 앉아있다. 중학생 주제에. 국물을 다 빨아먹어서 퉁퉁 불은 라면이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라면 먹으러 가면 옆에는 진영이가 아닌 혜정이와 앉아서 또 꼴베기 싫은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단무지를 주었는데 이상하게 라면을 먹지 않고 불어 터지는데 단무지는 다 먹고 빈 접시만 보였다. 중학생 주제에. 아무튼 이상한 놈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 교회 앞을 조깅하면서 오다 보니 분식집은 없어졌고 지금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는 동네 호프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성탕면을 먹기 전에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러 식재료를 넣어서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역시 맛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 안성탕면을 그냥 끓여 먹게 되면서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있다. 삶은 계란이나 계란 프라이, 남은 미역국을 넣어서 먹기도 했지만 새로운 맛에 눈을 떠버린 기분이다.
주제에 맞게 오늘은 라면인건가 https://youtu.be/l4DXQFYjkgY
이 노래의 배경그림은 2018년에 서울경인초등학교 6학년 3반 아이들이 노래 가사에 맞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음악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