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본다
미드는 아니고 벨기에 드라마 시리즈였나, 넷플릭스에서 했던 드라마였는데 초자연적인 스릴러 이야기였다. 어느 날 태양을 보는 순간 모두가 죽어버린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태양이 아직 비치지 않는 나라로 가는 이야기. 태양이 솟아올라 빛을 보면 그 사람은 죽어 버린다. 마치 몸에 있는 모든 세포와 기운이 빠져나가 버리듯이 그대로 푹 꼬꾸라져 죽어버린다. 그리고 태양이 훑고 지나간 곳의 과일이나 채소에는 맛이라는 것이 전부 빠져나가버린다. 그렇게 세상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벨기에인지, 어떤 나라의 군용 벙크 안으로 모여들면서 시리즈 1이 끝이 난다. 태양을 보는 순간 고통스럽거나 아파하지 않고 그냥 죽어버린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생각해보니 짤막한 리뷰를 적어 놓은 게 있어서 드레그 해서 가져와 봤다. 2020년 7월의 글이다.
[넷플릭스 벨드(벨기에 드라마) ‘인 투 더 나이트’, 한국 제목으로 ‘어둠 속으로’는 상당히 흥미 있는 영화다. 비행장에서 한 비행기로 군인 출신의 남자가 총을 들고 들어와서 문을 닫고 출발하라고 한다. 그는 빨리 떠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고 말한다. 비행장의 티브이에는 뉴스가 한창이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총을 들고 이미 시작되었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한다. 안 그러면 총을 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에는 몇 명 타지 않고 이륙을 하게 된다. 부조종사 한 명에 그저 헬기를 몰아본 실비라는 여자가 조종석에 앉고 각각 사연이 있는 주인공들을 태운 채 비행기는 어두운 밤하늘을 난다. 어둠 속으로는 제목처럼 어둠을 찾아서 계속 비행을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세계는 무슨 이유인지 태양이 비치는 순간 모두가 죽어 버린다. 과학적으로 $%$^&^&@@% 이런 이유로 해서 11년 만에 오는 태양의 어떤 부분이 과부하가 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지구의 해가 비치는 곳의 생명체는 모두 죽고 만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혀 같은 장기는 바짝 마른 상태로 죽는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하던 주인공들도 나중에는 믿게 되면서 비행기는 어두운 항로를 따라 태양이 비치는 밝은 날을 피해 어둠만 찾아서 비행을 한다. 그리고 연료가 떨어질 때는 아직 어두운 나라의 가까운 비행장을 찾아가면서 연료를 넣는다. 영화는 비행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사고를 보여준다. 그리고 태양은 통조림의 음식을 제외하고 과일 같은 식재료의 모든 분자구조를 망가트려 종이 맛을 내게 한다. 그리고 비행기 연료의 탄소성분도 망가트려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거나 리더를 교체하거나, 그 와중에 어떤 나라의 비행장에는 또 누군가를 버리고 오거나 엉망진창이다. 시즌 1은 6부작인데 한 회가 시작될 때마다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비행기를 탔는지 짤막하게 보여주며 시작을 한다.
영화는 답답함이 없다. 비행기라는 갇힌 공간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무전으로 연락이 된 살아있는 군인들이 있는 어느 나라의 벙커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즌 1이 막을 내린다. 벨기에 영화인데 잘 만들었다. 태양이 망가져서 지구의 생존한 것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설정에 빠져든다. 근래에는 세계의 종말,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이야기가 영화, 드라마. 소설 전반에 걸쳐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다루고 그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 아포칼립스가 도래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죽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서 이런 멸망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지금은 바다의 중심이 되는 빙하도 많이 녹아서 해수면이 조금씩 오르는데 2100년가에는 해수면이 1미터가 오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천천히 전조가 있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덮치는데 일본은 많은 땅덩어리가 바다에 잠긴다고 한다. 한반도도 뭐 어떻게 된다는 그런 과학적인 연구 이야기가 있다. 쨍쨍해야 할 올해 7월은 6월보다 시원했고 매미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비가 오면 차들이 잠기고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기까지 한다. 비가 많이 왔다고 해서 이 정도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리라고는 이전에는 몰랐었다. 자연도 미쳐 가는데 사람들은 나날이 더 난리고 더 미쳐간다. 근래에는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내몰린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에서는 침을 뱉으면 안 된다지만 일부러 침을 뱉는 미친놈도 있다. 이러다간 우리는 죽는 날까지는 별 탈이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말 그래도 매일이 생존이 될 가망이 높다. 그 사이에서 범죄가 필수가 되기도 하고 평범함이라는 것이 멀어질 수도 있다. 영화들은 여봐란듯이 지구가 조금씩 멸망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바짝 접근해서 만들어 낸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면 독감과 코로나가 쌍으로 온다는데 현실인지,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애매한 지금이다.]
이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넷플릭스에서 할 미드 ‘프럼’이라는 미지의 공포 스릴러 시리즈에는 한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그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그야말로 이 세계, 완전히 다른 세계에 갇히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밤이 되면 사람의 몸을 파 먹는 괴물들이 출몰한다. 괴물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며 캠핑 같은 것을 가다가 이런 마을에 고립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정신이 약해져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간다. 예쁜 여자, 보고 싶은 할머니 같은 인물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문을 열어 주는 순간 괴물의 모습이 되어 신체를 훼손한다. 아주 고통스럽게 죽인다. 이 시리즈에는 아이들도 가차 없이 신체가 훼손된다. 이 마을에 아이들이 없는 이유가 바로 아이들은 쉽게 괴물에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미드 프럼에서는 사람들이 괴물에게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한다. 오로지 오늘 밤을 견디는 것이 일상이 된다.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차를 몰고 마을 밖으로 가봐야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직 오늘 밤을 괴물에게서 살아남는 것이 삶이 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기 때문에.
그런데 태양빛을 보고 아무런 고통 없이 죽는다면 오히려 그렇게 죽는 방법이 작은 벙커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가며 똥오줌도 제대로 못 보며 갇혀있다가 서로 죽이려 들고 욕을 하고 강간을 하려고 하는 삶보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태양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질병으로 아파하면서 좁은 벙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더러운 냄새에 그저 살아있는 좀비 같은 신세일뿐이다. 알랭 드롱은 아들에게 목숨 연명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있어 봐야 살아 있되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죽기 직전 고통으로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건 늙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질병이나 불치병으로 그럴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뇌를 칼로 썰어대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비행기 안에서 기름이 떨어져 저 먼 하늘에서 태양이 서서히 일출할 기미가 오고, 다른 비행장에서 기름을 공수하는 과정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조마조마하며 볼 맛이라는 것이 났다. 그러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단지 죽는 것에서 피하려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한다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니까. 이 세상에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그저 태양을 보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고통 없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말의 어떤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누워서 태양을 본다면 쓰러질 필요도 없다. 덱체어에 건방진 자세로 누워 태양을 보며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항해를 한다.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삶에서 죽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는 내 삶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멀리하고 있다.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이다. 친구가 죽었을 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물에 빠졌으니까 물 밖으로 나오려고 온갖 힘을 썼을 것이다. 폐에 물이차고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웠을까. 세월호 속에서 공기가 빠져나가 점점 조여 오는 공포에 죽음으로 갔을 아이들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잘 모르지만 죽음이라는 걸 잘 받아들이려면 오늘을 그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