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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7. 2022

편육

사랑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 ‘바레인 1’의 모습을 보는 듯한 편육의 단면은 3초 정도 보고 있으면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편육의 묘미는 맛이다. 족발과는 다르면서 족발만큼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새우젓이고 된장이고 장에 찍어먹지 않고 그대로 쫀득한 물성을 느끼며 먹는 맛이 좋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참 좋아하는 사진작가인데 서울에서 전시가 있다. 8월 14일까지 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사진 대가들이 코로나를 뚫고 이렇게 한국에서 전시를 하면 예전에는 기를 쓰고 보러 다녔지만 지금의 나는 편육의 단면을 보며 구르스키의 갈증을 대신하고 있다.


저 앞, 사진이야기에서 한 번 말했지만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으로 유명하다. 그 일면에는 사진의 크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밖의 크기이다. 그러다 보니 필름 역시 자동차 뚜껑만 하다. 그렇게 큰 필름을 조수들이 영차영차 들고 설치를 하고 사진을 촬영을 하여 프린트 인화를 하는데 인화하는 것 역시 엄청난 노동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사진은 아무래도 평양에서 담은 군무 사진이다. 끝내준다.

구르스키는 독일의 베허학파라고 불리는데 그냥 베허부부에게서 사진을 배워서 그렇게 불린다. 베허학파는 일종의 유형학의 사진을 담는다. 정형화되고 규칙적인 패턴에서 인간은 심각한 안정을 얻는데 그런 사진을 말한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최초 공개하는 사진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구르스키의 규칙적인 패턴은 음식에서도 잘 볼 수 있다. 특히 편육의 단면을 보면 비규정적인데 규칙적이다. 모순인데 비 모순인 것이다. 사진도 그렇지만 음식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맛도 다르다. 아무리 맛있는 매콤한 음식도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맛이 없는 음식일 뿐이다.


편육 먹다가 이상한 곳까지 가버렸다. 편육은 어쩐지 족발에 비해 괄시받는 경향이 있다. 족발은 전문점이 있지만 편육은 전문점이 딱히 있지도 않고 시장의 한편에 수줍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집어 들고 와야 하는 정도다. 족발이나 편육은 삼계탕처럼 어느 집이건, 어느 식당이건 다 엇비슷하며 대체로 맛있다.


전통시장에서 직접 삶아서 돼지머리를 눌러 만들어서 파는 편육은 이제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과 마트에 가면 편육이 거짓말처럼 우르르 있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아파트 근처 중형마트에도 편육을 늘 팔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사 먹게 된다. 역시 맛있다. 실패가 없는 맛이다. 전국 어디에서 사 먹어도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짜장면은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그래서 실패할 수 있다. 돼지국밥도 돼지머리를 삶아서 육수를 우려내는가, 뼈를 삶아서 우려내는가, 살코기를 삶아서 우려내는가, 살코기와 뼈를 같이 삶아서 우려내는가, 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래서 돼지국밥도 실패할 수 있다. 가게마다 맛이 다 다르다.


그에 비해 삼계탕이나 족발, 편육 같은 음식은 어지간하면 대체로 다 맛이 엇비슷한데 맛있다. 특출 나지 않고 맛이 갈라지지도 않는다. 실망도 없지만 큰 만족도 없을 수 있다. 사람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재능이 뚜렷하여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또 내면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는 사람이 있고, 술렁술렁하며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꾸준함으로 남에게 욕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집에 경사가 있을 때 편육이 나오면 그 집은 정겹다. 우리나라 경조사에 올라오는 정해진 음식이 있는데 그 안에 편육이 있으면 어쩐지 인간적이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노란집’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박완서의 친구 중에 아들 두 명을 잘 키운 친구가 있는데 아들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각각 보내서 박사로 성공을 시켰다. 그 아들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박완서는 초정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결혼식은 친구의 자택에서, 정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박완서는 집안이 좋은 사람들이라 가든에서 열리는 거대한 결혼식을 생각하고 갔지만 그저 작은 마당에서 지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식 후 하객들을 위한 음식도 집 앞에 옛날식 국밥집에서 국밥을 조달하여 하객들을 먹였다. 서로 빙 둘러앉아 육개장을 먹으며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결혼식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라고 했다.


박완서 작가는 결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이 주례사였다. 주례 선생님은 신랑의 초등학교 담임이었다. 주례는 보통 신랑의 약력이나 업적을 먼저 말하고 주례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해 담임이었던 주례는 신랑이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이 되었는지 몰라서 그저 신랑의 초등학교 쩍 이야기를 했다.


신랑, 아무개 군은 초등학교 때 무척 오줌싸개였습니다.

와하하.

그리고 개구쟁이였던 신랑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대부분 주례사를 했다. 주례사를 하면서 주례도 웃고 하객들도 웃음바다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옛날식 국밥을 후루룩 먹으며 결혼식장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곳에는 권위도 겉치레도 없었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 옛날식 국밥, 음식이었다.


내가 꼬꼬마였을 때 아버지의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면 그때 음식 중에 편육이 꼭 있었다. 야유회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사진이 있어서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음식을 차려놓고 야유회를 즐겼다. 좋은 계절이었다. 많은 음식 중에 나는 편육을 집어 먹었다. 야유회가 끝나고 남은 음식은 집에 싸들고 왔는데 우리 집은 편육을 좀 많이 싸들고 왔다. 편육은 인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싸가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이 바닷가이니 편육이 맛있을 때는 바닷가 편의점 앞에 앉아서 쏴아 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편육 한 점에 맥주를 홀짝홀짝하며 먹는 것이다. 우리는 편육 사랑이다.



오늘 라디오에 나왔던 노래다. 박정수의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로 알고 있는 노래,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https://youtu.be/ZvSoboE8z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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