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l 25. 2022

8. 순간은 그것만의 생기가 있다

소설

    

 꽃이 피고 지는 건 인간의 삶과도 흡사하다. 피었다 싶으면 언젠가는 시들고 만다. 하지만 개화기의 처녀처럼 또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 예쁜 모습을 궁극적으로 보여준다. 좌절을 맛보았다고 해서 다시 찬란하게 빛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의 굴곡을 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꽃이 가득한 집에 살고 싶다. 예쁜 마당이 있어서 한가득 꽃을 심어놓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해마다 바라보다가 죽고 싶다. 벌레가 일 거야, 청소는? 같은 따위의 충고는 신경 쓰기 싫다. 말을 하지 못하는 꽃이지만 매일 관리를 해준다. 알록달록 일렬로 죽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 그 뒤의 어떤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모르고 당장 꽃을 보며 웃게 될지도 모른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에도 꽃을 친구의 어머니께 선물한다. 꽃을 받은 어머니는 꽃에 얼굴을 묻고 옛일을 잠시 생각할 것이다. 꽃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네가 나에게 필요하듯이. 비록 계절이 바뀌어 변심한 그처럼 시들어 나를 버릴 지라도. 꽃은 삶이기 때문에, 너는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기철이가 하루는 꽃에 관한 글을 문예지에 실어야 하는데 바빠서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기철이의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진부’라는 타이틀이 그것을 좀 완화시켜주고 있지만 이미 시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기철이가 적은 시를 보면 그 속에 나타나는 세계에 그만 놀라고 만다. 기철이 녀석의 시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같은 서사가 깃들어있다.     


 그에 비해 내가 적은 글은 우연이나 순간에 지배되거나 결정되어 버린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글은 지속성이 없기에 아무런 힘이 없다. 그저 껍데기일 뿐인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상후가 피아노 레슨이 없다며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동네의 목욕탕에 가지 않고 학교 근처에 있는 대형 사우나로 갔다. 대형 사우나인 그곳은 학생들은 가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는 비싸고 무엇보다 재수가 없으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곳은 냉탕이 동네 목욕탕에 비해 세 배나 컸다. 칫솔도 공짜에 수건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거기서는 남자들의, 그러니까 어른들의 거리낌 없는 내면의 세계도 볼 수 있었다. 요컨대 머리는 감지 않고 사타구니에 거품을 내어 계속 빗질을 하는 아저씨, 발톱을 깎고 냄새를 탐미적으로 맡는 아저씨, 다리를 기마자세로 벌리고 드라이기를 그곳에 대고 있는 아저씨, 무엇보다 목욕을 하고 나와 잠을 자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하나만 입고 잠을 잤다. 그 하나가 양말인 대책이 없는 아저씨도 있었다. 근육은 하나도 없는 문신이 온몸을 덮고 있어서 어깨가 한껏 천장으로 올라간 아저씨도 있었다.     


 우리는 냉탕에서 다이빙을 하고 서로 물을 뿌리며 놀았다.


 “조용히 햇, 이 새끼들아!” 문신이 소리를 질렀다. 지 소리가 더 크면서.     


 우리는 냉탕에 몸을 담그고 눈만 빼꼼 내놓고 눈치를 보며 낄낄거렸다. 물 밑으로 서로의 손이 아저씨를 향해 미사일이 되었다. 언젠가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처럼 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순간은 그것만의 생기가 있어. 순간으로 태어난 글이라고 해서 힘이 달리거나 껍데기라고 할 수 없어”라고 기철이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모. 든. 순. 간. 이. 모. 여. 영. 원. 을. 이. 룬. 다.



Roxette - Listen To Your Heart https://youtu.be/yCC_b5WHLX0

매거진의 이전글 7. 득재의 방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