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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6. 2022

7. 득재의 방에서

소설



 내가 클럽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부에는 문예부인 득재가 자주 왔었다. 득재는 기철이 덕분에 알게 된 녀석이었는데 사진부에 놀러 와서는 나에게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물었다. 사실 나는 사진에 관해서 그렇게 깊게 알고 있는 것이 없기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이나 유진 스미스의 사진집에서 본 사진을 토대로 내 마음대로 지껄였다.  

   

 이야기를 유심히 다 듣고 난 다음 득재는 카메라 가격만 물어봤다.


 “나도 카메라 가격 따위는 몰라. 집 장롱 속에 아버지 카메라가 있을 거야, 그걸 들고 와”라고 하면 득재는 깊은 한숨만 쉬었는데, 그때까지 득재가 하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터미네이터가 사진부 문을 쾅하며 자주 열어젖히는 것은 득재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있을 때 득재가 사진부 암실에 놀러 왔다. 사진부 선배들이 어디서 구해왔는데 서양 여자의 버진 사진을 들고 와서 득재의 영혼을 송두리 째 흔들어 놓고 공허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뒤로 득재는 카메라로 여체를 담는 방법이나 여체의 사진을 보러 종종 왔는데 컴퓨터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득재의 손에 직접 찍은 여체의 사진이 들려 있을 때 터미네이터가 들어왔고 우리는 끌려가서 교무실 앞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득재는 울릉도에서 온 녀석으로 방학 때 집으로 가는 것을 제외하면 혼자서 하숙을 했고 조금 친해진 다음에는 득재의 방에 우리는 자주 몰려갔다. 거기서 이불처럼 포개져서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득재의 방은 늘 담배 냄새가 벽에 눌어붙어 있었고 양궁부 진만이가 얼굴이 터진 채로 방구석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진만이는 우리 학교 짱으로 다른 학교와의 질서 다툼에는 늘 앞장섰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목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승모 근육과 팔 근육이 헐크와 비슷했다. 늘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고 우리가 득재 방에 가면 무심하게 “왔나”라고 한 마디 한 후 자신만의 사색에 들어갔다.     


 우리는 축제 기간 3일 동안에는 득재의 하숙방에서 합숙을 했는데, 나는 축제 기간 동안 예민해진 사진부 선배들에게 맞아서, 기철이는 늘 그렇듯이 축제 기간에도 터미네이터에게 맞아서, 진만이는 옆 학교 아이들과 싸워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밤이 되면 득재의 하숙방으로 각자의 모습으로 모여들었다.     


 나에게는 꽤 여러 장의 엘피판이 있어서 그것을 책처럼 들고 다녔는데, 그중에 데미스 루소스의 앨범이 몇 장 있었다. 득재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턴테이블이 있었고 우리는 밤에 드리우면 득재의 방에서 캡틴 큐를 홀짝이며 턴테이블에 바늘을 걸고 엘피를 들었다.     


 그러면 지지직거리며 미성의 데미스가 노래를 불렀다. 진만이도, 득재도, 우리는 몽땅 데미스 루소스의 목소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으로 우리는 득재의 방에 자리를 잡고, 눕거나 기대서 데미스 루소스의 ‘스프링 섬머 윈터 앤 폴’을 듣고 ‘레인 앤 티어’를 들었다.     


 그것에 토를 다는 사람도 없었고 캡틴큐 덕분에 데워진 몸으로 우리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형이상학적인 천장을 보며 데미스 루소스의 노래에 젖어들었다. 데미스의 목소리는 지친 우리에게 위로였다.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https://youtu.be/39KW4CCPJ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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