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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7. 2022

6. 개와의 인연

소설

 


 나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집은 오래된 기와집으로 집에는 다락도 있었다. 다락에는 아주 작은 창이 있었는데 그 창을 통해서 보는 동네의 풍경은 조금 색달랐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등나무가 있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마당이 있고 좌측으로 화단이 있고 맞은편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그 앞에는 큰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화장실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옆집의 화장실이었지만 두 화장실에 동시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옆에서 뭘 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똥을 누는데 옆 칸에 누군가 들어가면 다리가 저려도 먼저 나가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그때 똥을 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생리작용은 그런 인간의 노력을 깡그리 몰살시키기도 했다.     


 화장실 옆으로 작은 화단이 하나 더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독이 묻혀 있었다.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등나무에서는 봄이 되면 송충이가 가득했고 화단에는 손질되지 않은 나무에서 벌레가 탄생, 성장, 소멸하는 과정을 보기 싫어도 봐야 했고 덕분에 동네의 쥐들과 고양이들이 자주 마당으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어느 , 잠을 자는데 새벽녘 마당의 한구석에서 그르렁 거리는 하울링의 소리가 들렸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들리는 하울링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빗자루를 들고나가 보니 화단에서 흙을 온몸에 묻힌    리가 나를 보더니 입술을 말아 올리고 으르렁거렸다.    

 

 개는 다리를 다쳤는지 어쩌다가 우리 집 마당으로 굴러 떨어진 모양이었다. 몸을 제대로 못 일으켜 세우는 걸 보니 다리가 부러졌거나 심한 골절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다가가니 물어 죽일 것처럼 침을 흘리며 이를 드러냈고, 눈빛은 두려움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무리에서 쫓겨난 힘 잃은 늑대와 흡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어나 마당에 나와서 보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작은 이불을 가져와서 일단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어? 저건 내 이불인데.     


 개는 온몸이 까만색의 개였다. 어디서 산패한 음식을 잔뜩 먹었던지 며칠 동안 계속 구토를 하고 노란 물을 게워내었다. 낮에는 엄마가, 밤에는 아버지가 개를 돌보았다. 일주일 넘게 보살핌이 지속되니 개는 으르렁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개는 우리의 손을 저어했지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내준 것 같았다. 그 뒤로 개는 한없이 순한 면모를 보였다. 온몸이 까만색이라 우리는 그 개를 ‘깜순이’라 불렀다.     


 겨울의 끝물이지만 밤이면 아주 추웠다. 아버지는 목재를 사 와서 깜순이의 집을 지어주었고 그 안에 이불을 깔았다. 두꺼운 비닐로 외풍을 막아 주었더니 어설프지만 깜순이가 지낼만한 집의 모습이 되었다. 그 뒤로 깜순이는 그 집을 자기 집으로 알고 눌러앉았다. 깜순이는 점점 건강을 되찾았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 되었다.     


 깜순이는 꽤 여러 날 몹시 불편한 소리를 내더니, 봄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어느 날 새끼를 낳았다. 엉성하게 지어진 나무집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가 꼬물거리며 누워있었다.     


 그래, 고생했다.     


 개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 싶다. 친구들은 벚꽃이 만개한 일요일에 집으로 몰려와 깜순이와 새끼들을 구경했다. 이미 깜순이에 대해서 알고 있던 아이들은 깜순이를 보며 모두 수고했다고 말을 하곤 했다. 개구리는 깜순이의 새끼들을 보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철이는 그때에도 무엇인가 적고 있었는데 아마도 개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생명에 대한 시를 적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엄마는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서 깜순이에게 먹였다. 깜순이는 가누지 못하는 몸을 일으켜 소고기는 먹지 않고 혀를 굴려 미역을 골라 먹었다. 건강해져서 새끼들에게 젖을 물려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내내 눈물을 글썽이던 개구리가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새끼 강아지들을 위한 깜순이의 생명의 연장선에 미역국이 있었다. 그것은 꽤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는 깜순이와 새끼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당에 더블테크를 들고 나와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틀었다. 그날 나온 첫 노래가 ‘다이아몬드 앤 러스트’였다. 깜순이를 위해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마당에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벚꽃이 봄눈이 되어 하늘하늘거렸다.


https://youtu.be/IrVD0bP_ybg

존 바에즈 -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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