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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3. 2022

5. 카타스트로프

소설


  

 학주였던 터미네이터는 내가 클럽활동을 하는 사진부 암실에 아무렇지 않게 문을 확 열고 들어왔다. 대단히 짜증이 났고,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다른 학교에 비해 행복하게도 암실이 있었던 우리 학교 사진부는 불행하게도 교무실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터미네이터가 화장실에 가거나 퇴근을 할 때 시시때때로 암실에 들러서 사진부를 확인했다.     


 암실에서는 약물 두 가지로 흑백 사진을 인화할 수 있었는데 핀셋을 들고 흔들면 거짓말처럼 인화지에 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기적 같다고 생각을 했다. 빛이 이렇게 인화지 속에 그림을 선명하게 그리는 것이다. 별거 아닌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겼다. 사실 별거 아닌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끈다. 사진이 그랬다.     


 빛으로 그린 그림.


 4*6인치의 작은 인화지에 큰 세상이 담겼다.    

 

 돈이 별로 없었기에 모든 용돈을 필름을 구입하고 인화지를 사야 하는 것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나는 라면도 얻어먹고 소시지도 얻어먹고 맥주도 얻어먹고 감자튀김도 얻어먹었다. 당구를 칠 땐 필사적으로 이겨야 해서 집중하느라 당구장을 나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잘 걸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런 나를 얄밉게 보는 친구들은 없었다.     


 우리에겐 피아노를 전공하는 상후가 우리의 후광을 책임지고 있었다. 상후의 아버지는 지방 신문사 사장으로 3층짜리 집에 살며 검은 승용차를 타고 등교를 하고 하교는 우리와 함께 깔깔거리며 버스를 타고 했다.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면 상후를 제외한 우리끼리 단골 아지트 슈바빙으로 갔다.     


 터미네이터가 사진부 암실의 문을 여는 것은 느닷없어서 자칫 방심하고 있다가는 죠스(영화 007에 나오는) 같은 앞니를 봐야 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리고 터미네이터는 종종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곤 했다.     


 “모든 썩은 사회는 당대성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사회는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가장 썩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너희들 사진을 하는 예술가들이 할 일이지.” 같은, 마치 자신이 김수영 시인이 된 것처럼 말을 남기고 나가곤 했다. 도대체 터미네이터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사진부에는 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프린스의 퍼플레인에 빠져 있어서 혼자서 암실에 있을 땐 그 앨범을 자주 틀어놨다. 어느 날은 나 혼자 암실에서 인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터미네이터가 사진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암실의 문도 확 열어젖혔다.     


 그 순간,

 카. 타. 스. 트. 로. 프. 였다.     


 ‘인화작업 중’이나, ‘필름 현상 중’ 같은 팻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재앙이며 참극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는 암실을 고개를 돌려 둘러보더니 나에게 만두를 건네주고 씩 웃고 가버렸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나는 만두를 먹었고 만두의 맛은 새로운 도덕적 파괴의 맛이었다.




Disturbed - The Sound Of Silence https://youtu.be/u9Dg-g7t2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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