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리의 아지트는 올 댓 재즈, 슈바빙 그리고 또 한 곳이 대학교 근처의 ‘워터 덕’이라는 곳이었다. 이렇게 몇 군데에 걸쳐 우리는 지치지 않고 몰려다녔다. 워터 덕에서는 극장에서 잘 볼 수 없는 영화를 틀어주었다.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이류 문화를 지향하는 영화나 철 지난 예술영화 같은 것들을 틀어주기 때문이었다. 작은 상영관 같은 곳으로 카페 같은 분위기가 있고 밤에는 또 다르게 변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영화는 대게 상영관에 걸리지 않거나 상영을 해도 하루나 이틀 만에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슈바빙 누나에게서 들은 고다르의 알파빌 같은 영화를 보고 싶었다. 눈물을 흘려서는 사형이 되는 미래의 도시, 육체적인 관계는 허락되나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미래의 도시로 간 탐정 래미의 장 뤽 고다르식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기철이와 같은 문예부였던 득재는 “씨발” 같은 욕을 큰 소리로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워터 덕이 있었다.
워터 덕은 몇 주 동안 포르노물이나 음악에 관련된 다큐 영화를 상영할 때가 있었고, 프랑스 누벨바그,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같은 영화를 상영했다. 그런 영화들은 대체로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워터 덕을 찾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국문과 학생들이나 대학교 밴드 ‘물레방아’의 멤버들이나 음악을 하는 고등학생 밴드부나 영화에 깊게 빠져있거나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예술에 푹 빠져있는 성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나이와 생김새는 다르나 어떤 연대감 같은 것을 워터 덕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전혜린이 살았던 슈바빙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종교나 인종에 관계 없이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Duzen을 사용해서 말을 걸고 서로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워터 덕이었다.
그날은 워터 덕에서 상영하는 영화 ‘졸업’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일요일 오전에 그곳을 찾았다. 우리는 몽땅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했기 때문에 몇 번을 같이 봤었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현실 파괴의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상주의자였던 우리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영화였다.
워터 덕은 밤이 도래하면 꽤 기이한 곳으로 변했다. 저녁 7시가 되면 미성년자들은 다 내보냈다. 우리는 이전에 성인인 척하며 담배까지 입에 물고 앉아 있다가 주인에게 들켰는데 카운터의 아르바이트 대학생 형이 자주 오는 우리는 그냥 있게 해 주었다.
밤의 워터 덕의 모습을 말하자면,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쳐다볼 수 있게 서로 문을 열어 놓은 채 오줌을 누고, 맞은편에서 스스럼없이 똥을 누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피웠다. 만원을 내면 압생트 세 잔을 마실 수 있는데 대학생들은 거기에 커피라든가 포도주라든가 소주 같은 것들을 넣어 희석시켜 마시고 시간이 흐를수록 취해갔다. 압생트에 다른 술을 섞어 마시면 몹시 묘한 맛이 났고 사람들의 체취가 강하게 풍겨왔다.
수족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는 어른 팔뚝만 한 악어 한 마리가 있었다. 주인은 악어에게 운동을 시킨다며 주둥이를 나일론 줄로 묶어 밖으로 꺼내서 몰고 다녔다. 악어의 이름은 나비였는데, 한 번은 나비의 주둥이를 묶은 줄이 풀려 그곳에 온 외설스럽게 생긴 대학생의 허벅지가 나비에게 심하게 물렸다. 대학생은 물리면서도 고추가 살아있다며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며 감격의 압생트를 마셨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이다.
매일 그런 파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주기를 알 수는 없지만 종종 있었다. 보통 밤이 되면 미성년자를 내보내고 맥주를 팔았다. 그러면 대학생들은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봤다. 아르바이트 형이 바뀐 다음에 우리는 저녁에는 늘 쫓겨나고 말았기에 평일에는 가지 못하고 일요일의 저녁이 되기 전의 시간에만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자주 보던, 먼저 있던 아르바이트 대학생 형은 워터 덕과는 어울리지 않게 물리학도에 스마트하게 생겼는데 어째서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우리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마네킹 같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패티 보이드의 모습과 흡사했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일광 여고 짱이었던 배송미라는 여자애였다.
아아 사랑이란 정말.
우리는 그 형한테 “왜 이름이 워터 덕이예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처음에는 물오리라고 지었데. 근데 물오리가 촌스러워서 워터 덕이라고 바꿨지 뭐.”
오전 열 시면 영화는 시작한다. 공간은 협소하다. 스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벽장같이 생긴 벽면에 작은 스크린이 있으며 프로젝트 빔으로 빛을 쏘아 영화를 틀기 때문에 꼭 극장에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공간의 밖에는 카페처럼 꾸며놓았는데 촌스러운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서 차를 마시고 밤이 되면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 되면 테이블의 의자는 소거되었다. 물론 우리는 쫓겨났다. 역시 아르바이트 형이 바뀐 다음에.
그 형은 배송미에게 차인 다음에 그곳을 나갔다고 했다.
빔에서 쏘는 빛을 타고 먼지의 입자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먼지를 따라 영화 ‘졸업’에 빠져들었다. 벤저민과 일레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들이 영화를 꽉 꽉 메운다. 효상과 상후는 영화에 흐르는 음악이 나올 때면 몰두했고 개구리(후에 누구인지 밝힌다)는 조용하게 옆에 앉아있는 기철이나 나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 졸업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일탈에 성공한 벤저민과 일레인의 웃음기가 미묘하게 걷히면서 앞으로 닥쳐올 암울한 현실의 불안함을 암시하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행복한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장면에서 두려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성 가치와 부조리성에 학생이라는 특권적 시효 상실과 언젠가 닥쳐올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의 고갈이 막연하게나마 영화를 통해서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어렸지만 그 충격파를 견디기 위해서, 또는 계속 충격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해 우리는 졸업을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봤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동시에 슬픈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