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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27. 2022

집 근처 바닷가 카페에서

오전의 일탈

전망 좋고, 조망 좋고


오전에 엔진오일 교체하러 갔다가 차가 오래되어서 여기, 여기, 여기, 여기 교체해야 합니다, 몇 시간 있다가 오세요,라고 해서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 빛이 바다에 부딪혀 튕겨 나는 모습이 무엇을 암시하는 듯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 공간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은 2022년의 시월이 아니라 같지만 다른 세계의 2Q22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음이 소거되었고 바다가 어딘가에 부딪혀 우는 소리만 들렸다. 마치 이쪽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포말이 되는 것 같았다.


포구에 서서 한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젝스가 하고 싶어졌다. 어떤 연상도 없이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나라는 인간은 저 먼 아름다운 수평선을 보고 젝스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위해 반기는 이 깨끗하고 투명한 빛이 얼굴에 닿는 기분이 좋았다. 왜 이런 때에 젝스가. 구름은 그림처럼 떠 있었고 수평선 위에는 존재를 알리는 유조선들이 점처럼 보였다. 어떻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닷가에 살면 자주 볼 수 있지만 아파트 현관처럼 매일 보다 보면 시큰둥해져서 마음껏 감상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늘 가까이 있을 때 얼굴을 자주 보고 어루만지고 표정의 변화를 살펴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다.


포구에는 누가 봐도 이제 모든 일손과 생활의 전선에서 손을 놓은 노인들이 나와서 담소 중이었다. 아마 친밀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그들에게는 하루 중 제일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오전에 집에서 나오다 보면 경로당 앞에 모인 할아버지들을 봐도 그렇다. 어떤 노인은 나 아직 건장해,라고 하는 듯 담배를 피우고 있고 또 어떤 노인은 멋진 체육복을 입고 자랑이라고 하듯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나는 포구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 그들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노인들은 김문수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칭찬일색이었다.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큰 소리로 김문수 잘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문수가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유튜브를 닫았지만 이전에는 유튜브 슈퍼쳇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짝 유튜브 중에 슈퍼쳇으로 번 돈이 세계에서 1등과 2등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 번 눈물을 흘리거나 큰 소리를 내며 울면 통장에 돈이 우르르 들어온다니.


아직 10시 전인데 문을 연 로컬카페가 있어서 들어왔다. 카푸치노를 마셨다. 매일 싸구려 커피만 마시다가 예쁜 잔에 담긴 비싼 커피를 마셨더니 색다르고 맛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컵과 접시가 있는 컵에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한 입 마시고 컵을 놓을 때 접시에 닿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렇지만 매일 마시는 싸구려 커피도 맛있다. 싸구려 입맛인 나에게는 매일 마시는 커피가 일상이라 좋다. 가끔 이렇게 마시는 비싼 커피는 커피의 맛보다 일상 속 일탈의 맛이라 좋다.


카페의 주인은 50대로 보이는데 기분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발랄한 목소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카푸치노에 시나몬을 뿌려 드릴까요?라고 하는데 사투리의 억양도 없고 웃음도 밖의 빛처럼 밝고 좋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가끔 이런 카페를 오면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든다. 카페는 1층인데 2층이다. 1층인데 창문 밑으로는 도로가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 밑에서 보면 2층처럼 보인다.


사진을 찍었는데 색감이 다른 이유는 하나는 폰이고 하나는 아이패드로 찍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느닷없이 막대한 시간이 주어지니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패드가 ios16로 업그레이드를 하기 전에는 ‘ㄷ’ 자를 두 번 두드리면 ‘ㄸ’이 되었는데 업그레이드 후에는 그게 되지 않는다. 폰으로도 그렇다. 다닥하고 두 번 두드리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쌍디귿을 칠 때는 ㄷㄷ이 자꾸 된다. 참 별거 아닌데 거슬린다. 아이패드 6세대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는데 그건 다닥하고 두 번 두드리면 바로 ‘ㄸ’가 된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다.


인간의 활동반경을 보면 아주 단순하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를 바 없고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하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오늘의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서 움직일 게 뻔하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즉 생각은 너무나 복잡하다. 여러 개의 끈을 마음의 손이 잡고 있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되는 지점까지 간다. 아차 싶으면 그 끈을 놓치게 되고 그걸 계기로 일순간 무너진다. 그럴 때 버스 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모르는 이가 옆에 앉았다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같은 원초적인 질문과 문제에 봉착하고 그 안에 ‘나’를 집어넣으면 자아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찾아도 ‘나’라고 하는 자아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왔으면 이제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의 형태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살아왔는데 전혀 내가 보이지 않으면 생각의 탑이 허물어진다. 허무하고 마냥 울고 싶어 진다. 눈물이 나오지만 눈물의 원인을 알 수 없고 아무리 흘려도 끝없이 눈물이 나온다.


점점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어지고 누군갈 미워한다거나 싫어하지도 않게 된다. 슬퍼하지도 않으며 기쁜 것 역시 없어진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나 힘들다. 에너지가 필요한데 어떤 식으로 보충을 해야 하는지 알 길은 없다.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다. 여기가 전쟁터라면 오히려 낫다. 전쟁터라면 끝이 보이고 승산이라고 있지만 여기는 지옥이다. 지옥이라는 무한 굴레 속에서 감정을 소모시키기만 할 뿐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런 삶 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잘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데. 올바르게 살아왔다고는 못해도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니 정말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2022년과 동떨어진 2Q22년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의 너울거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무력감의 크기와 넓이를 잴 수는 없지만 자꾸 확대되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다는 어제도 저 모습이었고 한 달 전에도 저 모습이었고 일 년 전, 백 년 전에도 저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저 모습일 것이다.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바다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모습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시간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 같은 바다를 찾을 때 인간의 모습은 그렇게나 변해있다. 형태가 있건 없든 간에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지만 바다는 거기에서 비켜가 있다. 바다의 모습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페에는 카를라 부르니의 스탠 바이 유어 맨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좀 차가운, 그러나 햇빛은 약간 따갑고 한 계절이 또 끝나가려는 오늘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여기가 안 본 사이에 야영장이 되었다, 자동차와 텐트를 칠 수 있는
고만고만한 바닷가 포구는 늘 포근하다
꼬질한 벤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몇 시간이라도 있을 수 있는
아이패드로 찍은
걷다가 어딘지 모를 건물에서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카를라 부르니의 스탠 바이 유어 맨, 배캠에서 라이브로 부르는 버전이다. 몹시 황홀하다 https://youtu.be/02EGHkVR4-8

영상출처: MBC Radio 봉춘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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