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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3. 2022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는 같은 공간이지만 시간이 상대적이다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 주인공은 이쪽에 있는 현실 세계와 저쪽에 있는 정신세계의 끝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이쪽 세계에서 죽더라도 저쪽 세계에서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즉 같은 공간에 동시 존재하기에 두 세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같이 존재하는 동시에 다르게 존재한다.


동시 존재의 이 세계관은 이창동 감독이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버닝'에도 잘 나온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벤이 그런 말을 한다. 여기에도 존재하고 동시에 거기에도 존재한다고. 또 스팅의 symphonicities 앨범에도 그 세계관을 나타냈다.


시간의 상대성, 이는 요즘 역주행 중인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과도 흡사하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한 부분이다. 블랙홀이 천체를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강한 중력에 의해서 별들의 입자를 쪼개버린다. 그것들이 빛의 속도에 가깝게 블랙홀에 다가오는데, 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열을 방출하면서 빛나게 된다. 이 빛은 별들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빛인데 이걸 강착 원반이라고 한다.


과커 엑소에 따르면 블랙홀이 만들어지면 블랙홀 근처로 가면 갈수록 중력이 점점 세진다. 근데 이 세지는 정도가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부터 안쪽까지는 블랙홀이고 그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라고 한다. 빛이 사건의 지평선 바로 앞에 있으면 탈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에 닿는 순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그 경계의 내부와 외부의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른다.


블랙홀에 빠져 들어간다는 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굉장히 큰 천체에 가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보는 관측자 입장에서 보면 블랙홀에 빠져드는 사람을 본다면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흐른다. 지구에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을 본다면 사건의 지평선에 닿기 직전에는 아예 그 사람의 시간에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 년, 천년을 여기서 블랙홀에 빠져드는 사람을 관측한다고 해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은 이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는데도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관측자는 그 사람이 멈춘 것처럼 계속 보인다.


바꿔 말하면 블랙홀에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간이 상대적이니까 사건의 지평선을 등지고 주변의 우주를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른다. 우주의 역사를 블랙홀에 빠지면서 다 보게 될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런데 이런 우주의 사건의 지평선에 관한 내용을 윤하가 사랑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 뮤비를 보면 위에서 말한 블랙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가사에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별들의 마지막 삶에서 강착 원반처럼 서로 부딪혀 열을 방출하면서 사라지듯이 두 사람의 사랑도 사건의 지평선에 닿아 하얀빛이 되어 쪼개져 옅어진다. 그리고 윤하는 블랙홀에 뛰어들어 사건의 지평선을 등지고 지구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련 없이 잊는다. 남자는 한순간에 시간 속으로 빛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남자는 지구에서 사건의 지평선에 빠지는 윤하를 본다. 상대성 시간이기 때문에 남자의 눈에는 블랙홀에 빠져 버린 윤하가 그대로 멈춰 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상대적인 시간 때문에, 남자는 미련 때문에 끝까지 윤하가 블랙홀에 빠지는 건 보지 못한다. 잊지 못하는 것이다.


윤하는 어떻게 이렇게 천재적으로 블랙홀인 사건의 지평선을 사랑에 담아서 노래로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가사에 그 흔한 영어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록이다. 드럼의 소리가 정말 좋다. 거기에 윤하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진다. '혜성'부터 '별의 조각' 등 우주에 관한 노래들이 많은데 전부 천체물리학을 깊게 파고들어 노래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아. 이 미친 만렙의 천재력인 무엇.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역시 시간의 상대성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두 세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림자를 버리고 마음을 잃고 불멸하며 살아가는 세계의 끝에서의 시간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과는 다르다. 동시 존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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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뮤비를 함 볼까.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https://youtu.be/BBdC1rl5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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