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린의 손길 10

소설

by 교관


10.


최지은 씨도 마찬가지였다. 졸업 후 은행의 정직원이 되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는 너만 힘들 줄 아니? 모두가 힘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작 내 손의 가시 박힌 게 타인의 불치병보다 아픈 법이다. 최지은 씨는 일을 잘하지 못해서 혼이 나는 건 참을 만했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고객응대는 생각과는 너무 달랐고 상사들은 적응하지 못하는 최지은 씨를 업신여기거나 몰아세우기만 했다. 특히 선배 여직원들이 그랬다. 남자 임원들이 최지은 씨를 예뻐한다는 이유였다. 고객의 예금을 책임져야 하는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고가 나고 그 사고에 돈이 얽혀 있다면 담당자인 최지은 씨가 다 물어야 했다.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10원짜리 하나하나 맞춰야 했다.


어쩐지 점점 인간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선배들처럼 이 시기를 잘 견딘다면 멋진 은행원이 될 거야. 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나날이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은행이라는 곳이 거대한 지옥의 입구처럼 여겨졌다. 고객과의 응대에서 고객이 화를 내거나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고 손이 떨렸다. 손이 떨리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모임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은행에서 일을 하다 먹은 점심은 늘 소회가 안 되어서 소화제를 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모임에서 먹는 음료와 먹거리는 맛있기만 했다.


메를린은 모임의 회원들 마음속 비어 있는 공간을 파고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빈속을 채워주기까지 했다. 인간과의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은 그 집단에서 물건 취급을 받는다. 자신을 향해하는 말이 아님에도 쑥덕쑥덕 거리면 위축되고 사람들이 나를 소외시킨다고 느낀다. 그러고 나면 그 집단에서 멀쩡하게 생활하기가 힘들다.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하고, 하지 말아도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불려 가서 또 험한 소리를 들어야 하고 같은 팀에 불이익을 주게 된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집에서는 회사에 가서 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매일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메를린은 최지은 씨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메를린은 최지은 씨보다 5, 6살 정도 많고 언니 같았다. 최지은 씨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눈을 보며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최지은 씨가 하는 이야기를 토 달지 않고,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다 들은 다음에는 신뢰 가는 목소리와 톤으로 달래주었고 메를린의 종규적인 신념으로 최지은 씨의 마음을 안아 주었다.


최지은 씨는 영어가 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령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던 엄마에게 조차도.


메를린은 최지은 씨의 양손을 잡고 지금 이렇게 힘든 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순간 끝나게 된다. 이 모든 어지럽고 복잡하고 힘든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지 한 번 봐라,라고 메를린은 조용하게 최지은 씨에게 말을 했다.


불안과 고통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게 된다. 마음을 열고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게 최지은 씨를 붙들고 있는 무거운 쇠사슬을 풀어 버리는 방법이다.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모임을 가지는 동안 이 더럽고 추악한 인간관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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