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난다
매일 어느 정도의 글을 쓰고 있는데 일기는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적어보는 오늘의 일기다.
매년 1월 초가 되면 군대 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간신히 작대기 네 개를 달고 이제 날개를 피려고 할 때였다. 한 해 끝의 겨울과 초의 겨울이 있다면,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난 뒤 혹독한 12월의 차가운 겨울을 지내고 맞이하는 1월의 겨울은 비록 체감은 추울지 모르나 어쩐지 나는 계급이 올라서 그런지 그렇게 추운지 몰랐다.
딱 이 맘 때가 가장 편해지는 시기였다. 비공식적으로 구타에서 완전하게 열외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훈련이 없고 근무만 하기 때문에 내무생활이 기가 막히게 빡세다. 빡센 이유는 뭔가가 고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구타를 당하기 때문이다. 잘 맞으면 가슴이나 등이고 잘못 맞으면 얼굴을 맞는다. 얼굴은 맞으면 표가 나서 잘 때리지 않지만 법무부 소속 중대장들은 우리들, 군인신분과는 다른 일반인이기 때문에 여러 말썽이 위로 올라가면 자기네들도 징계를 받는다. 그래서 그냥 쉬쉬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때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대할 때까지 말썽을 일으킨 졸다구 한 번 때리지 못하고 제대를 한 것은 후! 회! 한! 다! 뽀드득. 그러나 군대의 시계도 째깍째깍 가기에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절차에서 다 훨훨 벗어나게 된다. 1월 1일이 되면 특식이 나오는데 탕수육이 나온다. 특식이 나오는 날이 있다. 복날에는 삼계탕이 나오고, 뭐 어떤 날에는 갈비탕이 나오기도 한다. 탕수육은 중국집 탕수육만큼 맛있다.
군생활을 구치소에서 보내는 법무부 소속인 우리는, 국방부 소속인 육해공군처럼 취사병이 있지 않다. 사방(감방의 정확한 명칭)의 재소자(죄수들의 정확한 명칭)들이 소내의 식사를 전부 책임진다. 구치소는 교도소와 다르게 미결수들이 구금되어 있다. 미결수라 함은 아직 판사의 선고가 떨어지기 전 재소자를 말한다. 입고 있는 재소자복도 교소도에서 실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와는 다르다. 재판이 이뤄지는 가운데 구속이 된 미결수들이 구치소에 가득 있지만 교도소처럼 실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들도 있다. 이들은 기결수다.
구치소 내에서 형을 사는 기결수는 소 내의 청소, 소각, 공장, 식사를 담당한다. 그리고 월급이 나온다. 소 내 각 사방에 올라가는 미결수들의 식사는 남자 기결수들이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한다. 그때 운이 좋아 계호를 하면 그냥 취장 입구에서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식사 준비가 끝나면 컵라면을 하나 끓여 주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다. 고추장 조금, 참기름, 그리고 아주 신선한 계란을 하나 넣어서 주는데 다 같이 앉아서 후루룩 컵라면을 먹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직원들과 군인들의 식사는 여자 재소자들이 책임진다. 아무튼 밥이 맛있다. 그래서 직원이고 군인이고 제대가 다가오거나 직원이 되고 몇 년 지나면 살이 붙는다. 아침점심저녁 전부 맛있다. 여자 재소자들은 의외로 살인이 많은데 바람을 피운 남편과 싸우다가 밀었는데 그만,,,, 같은 이유가 있고, 횡령이 많았다. 횡령은 여자 직원에게 사장 놈들이 월급을 제대로 안 주니까 몇 달씩 월급을 받지 못한 여직원이 돈을 들고, 같은 이유가 있다.
그래서 재소자들과 친해지면 그들의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먹으라고 넣어준 과일이나 소시지나 오징어를 많이 얻어먹는다. 사방에 올라가면 군복 안으로 귤이나 사과, 특히 소시지는 너무 맛있는데 막 넣어준다. 사방에서 내려올 때 배가 이렇게 불러서 보안실을 지나올 때 직원들이 봐도 그러려니 했다.
1월 1일에는 탕수육이 나왔다. 그때 먹은 탕수육이 좀 웃기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탕수육 중에 제일 맛있었다. 뭐든 많이 먹으면 질리는데 이만큼 퍼 와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물병에 소주를 담아 식당에 가서 탕수육에 한잔 들이켜면 식당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노곤해지면서 기분이 모호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같은 느낌이었다.
탕수육은 아주 깨끗한 기름에 튀겨져서 씹으면 바싹하고 안의 고기는 두툼하고 육즙이 팍 나온다. 소스는 딱 먹기 좋을 정도의 당도와 과일 맛이 많이 나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맛이었다. 구치소 내에 들어오는 식재료는 전부 1등급이다. 밖에서 처럼 음식으로 장난을 칠 수 없다. 사과도 제일 좋은 거, 양파나 감자 같은 것도 좋은 것들이다. 기름도 여러 번 사용하지 않는다. 옹달샘처럼 깨끗한 기름에 촤르르 튀긴 탕수육은 정말 맛있었다.
식당에서 일을 하는 재소자들은 대부분 어머니 뻘이라 먹고 더 주세요, 하면 어머니들이 좋아하며 마구 퍼 주었다. 어쩌다 밖의 세계와 단절된 구치소에 들어와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지만 밖에서 만났다면 다 똑같다. 아니 구치소 내에서 이야기를 해도 다 똑같다. 좀 웃기지만 대부분 재소자들과 직원들 그리고 군인들은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물론 폭력전과범들이나 형정신정의약품 취급이나 독방에 갇혀있는 재소자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대부분은 친하다면 다 친하게 지냈다. 특히 나는 군생활하면서 가장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 대부분이 사방에서 얻어왔다. 올라가면 막 준다. 다른 잡지책들은 여성이 벗었거나 속옷을 입고 있는 사진은 검열에 걸려 그 사진들을 뺀 잡지가 사방으로 올라가지만 소설책은 그대로 올라갔다.
1월은 춥지만 식당의 창을 사이에 두고 밖과 안의 온도차는 대단했다. 1월 1일은 휴일이라 탕수육을 먹으며 물병에 담은 소주를 홀짝이고 막사로 돌아와서 역시 해가 드는 창가에 앉아서 소설을 보다 보면 어느새 세상이 바뀌고 나는 소설 속에 와 있었다.
오늘의 선곡은 옆 나라의 밴드, 밴드 메이드의 노래다. 여성 5인조로 2013년에 결성하여 인디에서 활동하다 메이저로 올라온 헤비메탈 그룹인데 강력강력 초강력 메탈을 선보인다. 졸라 멋짐. 밴드 메이드의 다이스 https://youtu.be/ZpAYnVJX9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