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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3

1장 당일



23.

 계절 또한 변이하고 있었다. 한낮의 온도가 35도를 넘어가는 날, 밤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시멘트나 아스콘 특유의 냄새를 사람들의 코 안으로 밀어 넣었다. 건조한 여름날에 내리는 비 비린내도 지금처럼 장마 기간 중에 떨어지는 냄새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는 시멘트 냄새와 뒤섞인 비 비린내를 저쪽 세계에서 어떠한 문을 쾅 열고 통과하여 나온 것 같은 묘한 냄새를 풍겼다. 한여름의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는 실내 체육관에서 역기를 드는 남자들처럼, 얼굴의 표정을 일그러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비가 후드득, 큰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비 비린내가 자아내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땀과 함께 얼굴을 타고 가슴골을 지나서 배로 내려가는 빗방울의 느낌은 아주 좋은 기분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떨어지는 비는 정의 할 수 없는 흥분을 자아냈다. 조깅코스 어딘가에서 비를 피했다가 다시 달려가면 되지만 마동은 비를 맞으며 조깅코스의 앞으로 달려가려는 강한 끌림을 받았다. 이처럼 잡아당기는 끌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끌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동은 알고 싶었다. 알고 싶다는 욕망적 근원이 팽창하며 마음속의 어느 부분에서 일렁거렸다.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마동은 다시 전위를 가다듬고 달리기 시작했다. 긴팔의 긴치마의 여자를 쓱 지나치며 곁눈질로 여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마동의 목적은 어쩌면 여자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함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시 정면을 응시한 꼿꼿한 눈동자 속에는 ‘적당히’를 넘어선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과 차가운 감성이 서려있었다.


 잠깐 스쳐 지나치는 여자의 눈동자 속에서 어째서 그런 것들이 보이는 것일까.


 저런 복장으로 필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운동을 목적으로 긴팔에 긴치마를 입고 미동도 거의 없이 조깅코스를 하릴없이 걷지는 않을 것이다. 장마기간의 스산한 밤에 비까지 내려 더욱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거닐다가 혹시 취객들에게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까.


 마동은 그런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요즘처럼 성희롱 때문에 떠들썩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자신이 왜 이렇게 그저 지나치는 여자에게 신경이 쓰이는지 놀랐다. 마동은 고개를 저었다. 스쳐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동은 지나치는 여자에 대해서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자꾸 생각이 났다. 마치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 스치는 여자의 눈동자는 차가운 달처럼 보였다.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달이 마치 작은 수정으로 축소되어서 여자의 눈동자를 대신해 조깅코스의 앞을 밝히며 걸어가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여자의 눈 속에 비친 달은 무거운 침묵을 잔뜩 지닌 채 어떠한 말에도 함구할 거야,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고 하늘의 달을 여자는 자신의 눈 속에 고이 안착시킨 후 앞으로 이동했다. 마동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아 이래선 조깅을 하는 것은 무리다. 생각하지 말자.


 마동은 다시 고개를 여러 번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으로 빗물이 떨어졌다. 차가운 냉철함이 여자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 비가 투두둑하며 거친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여자의 근처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는 여자의 옷깃이나 머리카락을 전혀 적시지 못했다.


 뭐지? 몸에 어떤 장치를 한 것일까? 어째서 비가 여자의 몸을 적시지 못하는 것일까.


 마동은 달리면서 팔뚝을 쳐다보았다. 팔뚝에서 열을 내며 방출시킨 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아서 시원하다는 감촉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굳이 설명 따위로 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논리로 설명을 하려면 비에 젖지 않는 저 여자 쪽을 설명하는 편이 나았다. 마동은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혼동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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