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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6. 2020

달리기를 말할 때 나는 자주 걸었고 가끔 쉬었다.

조깅 에세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지도 16년이 되어간다. 하루키는 달리면서 신체 근육도 달리는 패턴에 맞게 바뀌고 조직도 바뀌었다고 했다. 그건 가는 팔다리에 근육이 적당히 붙고 나이가 들수록 더 잘 달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반대인 것 같다. 몇 해 전에 비해 달리는 거리도 좁혀졌고 속도도 줄어들었고 달리는 중에 한 번 걸었다면 요즘은 두세 번은 걷는다. 그 정도로 달리는 것이 힘겨워졌다. 하루키는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10시 전에 잠들고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산책하고 자신의 볼일을 보는 루틴으로 죽 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인해 지금까지 신체에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타고난 육체가 이상하리만치 튼튼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2년 전부터는 탄산음료를 마시기 시작했고 편의점 음식을 사 먹기 시작했다. 2년 전, 그 이전에는 물과 맥주 이외에는 다른 음료는 마시지 않았다. 식단도 채식 위주였고 달리는 거리도 10킬로 정도로 꽤 되는 거리를 꼬박꼬박 하루에 한두 시간을 들여 조깅을 했다. 사진을 봐도 허벅지에는 근육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고 상체는 늘씬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어쩐지 배는 나오고 몸은 조금 무거워졌으며 달리는 중간에 근력운동을 하는 바람에 상체는 두꺼워졌다. 비슷한 패턴으로 조깅을 하지만 매일 먹는 것이 달라져버리면 신체 역시 반응을 하는 것이다.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정크 푸드에 맞게 신체는 변이 한다. 그리고 12시 전에 잠이 들던 습관에서 벗어나 새벽까지 책을 좀 보거나 글을 좀 쓰다가, 또는 디오라마를 만들다 보니 그 시간에 의욕적으로 입으로 먹을 것을 야금야금 먹었다.

정크 푸드는 2년 동안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어 내가 의지적으로 하는 생각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24시간 중에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하는 것이라 매일 조깅을 하는 것에 큰 무리 없이 시간이 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2년 동안의 나를 돌아보면 비도 오지 않음에도 오늘은 어쩐지 조깅을 하기에는 무리지? 같은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 10가지를 만들었다. 이전에 그런 생각이 들면 달려야 하는 이유 고작 1가지가 10가지의 이유를 이겼지만 이젠 자신이 없어졌다.

2년 전에는 겨울에 비가 오면 15층짜리 건물의 계단을 한 시간 동안 오르내렸다.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겨울의 조깅은 그만큼 땀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어떤 해는 일 년에 이틀을 제외하고는 몽땅 달렸었다. 하지만 올해는 벌써 일주일은 달리지 않았다. 달리는 거리도 좁아졌고, 거리 중간중간 집어넣었던 언덕이나 오르막길, 높은 계단은 전부 빼버렸다. 그러니 신체는 2년을 거치면서 붙지 않았던 곳에 살이 붙었다.

10년이 넘는 생활 동안 소설을 쓰기로 했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오랜 시간 있어야 했고 하는 일도 큰 노동을 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나는 충분했다. 2년 전에는 먹는 한 끼가 허기를 멈추게 하는 정도에서 멈추었다면 정크 푸드를 맛 본 뒤로는 배가 부르게 먹게 되었다. 물론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편의점은 정말 선물상자 같은 곳이었다. 쉽게 손을 뻗어서 간단하게 조리를 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비교적 덜 먹었던 라면도 자주 먹게 되었다. 컵라면에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먹는 것을 좋아해서 왕왕 그렇게 먹고 말았다. 방울토마토의 신 맛이 녹아있는 라면 국물은 나의 뇌를 흔들어 놓는다. 

10년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쉬는 날에 30킬로미터를 꼭 뛰었다. 작은 가방에 양말도 한 켤레 넣고 오전에 집을 나와서 천천히 달려서 3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여러 풍경이 스치고 지나간다. 주로 자동차를 많이 보게 되지만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에는 자동차 이외의 풍경에 눈이 돌아간다. 평소 보지 못하는 곳을 본다. 그곳에는 일상에서 벗어난 세계가 정확하게 있었다.

30킬로 미터라고 정한 것은 그 이상 달리는 것은 평발인 내 발바닥이 받쳐주지 않았다. 맥시멈이 30킬로 미터라는 걸 알고 마라톤은 포기를 했다. 나는 어쩐지 포기도 빠르다. 10년 전부터는 한 달에 한 번 달리는 30킬로미터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렇게 나 자신과 조금씩 타협을 하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오늘에 이르렀을 때 내 신체는 과연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내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은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옷을 입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그 속에 잔뜩 있다. 확고한 내면의 시스템을 확립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지점에서 멋대로 와해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쓰는 소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에 이렇게 와해되어 가는 내면의 시스템과 신체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은 넘어가려 한다. 오래전 내 내면의 확고한 시스템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옆의 한 명만 봐주면 돼, 그러면 괜찮아. 하는 생각이 강해서 앞뒤 볼 것 없이 열심히 소설을 적고 매일 달려 조깅 화를 자주 구입했다. 시스템의 와해의 중심에는 그 한 사람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그리움과 그리움 때문에 커지는 불안이다. 

노르웨이 숲을 보면 나오코가 들어갔던 요양소의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의 문제를 밀어내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겠다. 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잘 안 되는 것이 이상하지만 인간은 이상하고 외로운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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