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14.
인간 공포도 무섭지만 혼자서 고독 속에 갇히는 것이 지금은 더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바람은 역시 무시를 당하고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쿨쿨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월부 책값을 받으면 그들을 데리고 창녀를 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빌미를 내보였을 때는 그들을 경멸하는 웃음을 보였지만 저는 저를 경멸하기로 했습니다.
창녀는 여성도, 인간도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버린 발광 존재이기 때문에 창녀의 품에서 밤새 안심하고 서글플 정도로 잠이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녀와 저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방으로 홀로 들어가 고독의 공포를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여보. 여보.
여관의 방 벽에 꾸물꾸물 아내가 보였습니다. 울고 싶지만 이제 울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울 수도 없습니다. 운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허영이 개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흐느끼면서 허영을 채울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울 수 없다는 말은 더 이상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그늘의 인간이었습니다. 완벽한 어둠은 아니지만 밝지도 않으며 축축한 채인 인간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처참한 패배자가 되기는 싫습니다.
사실은 고독한 지금 소리를 내서 울고 싶습니다. 각자 방에서 잠들어 있을 ‘안 형’과 ‘김 형’을 깨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울고 싶습니다. 흐느끼고 싶습니다. 여보라고 다시 한번 크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보여줬던 다정한 마음을 간절하게 한 번만 더 느낄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내 덕에 겨우 사라졌던 고독에 대한 고통이 지옥의 불바다처럼 번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유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은 뼛 속까지 침투하여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게 할 것이며 고통은 인간 고통을 두 배, 세 배 늘려줄 것입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서는 인간 공포를, 인간이 없는 곳에서는 고독 공포의 고통이 나를 덮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