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수기 15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by 교관


15.


이제 더 이상 이 고통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편안해지겠습니다.

죽고 사는 건 시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사람들이 삶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지옥에서 겨우 견디듯 신음하기보다는 편안해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이 이상의 지옥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아니 없습니다.


화마 속으로 돈을 몽땅 집어던지고 받을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 그들에게 보내는 저의 위트였습니다만 결국 위트 덕분에 그들은 나를 고독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들을 욕되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제가 할 수 있는 이 위트가 모순이며 역설이었습니다.


필경 저한테는 아내가 없는 휑한 방에서 혼자 ‘생활’ 해 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아내가 있다가 없어진 방에서 혼자 잠이 들고 혼자 일어나는 것이 끔찍하고 누군가 벽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일격을 가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저를 몸을 덜덜 떨게 할 것입니다.


제 운명은 일변[一變] 한 것입니다. 이제 잠이 들면 아내를 만날 것입니다.

급성을 달고 산 아내를 만나 정사를 할 것입니다.

잠드는 시간만큼은 공포를 잊을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저의 진정한 위트입니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적었기에 아무런 문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환이 가져다준 자리끼를 마시고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꿈에서 아내를 만날 것입니다.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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