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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1. 2023

드라이브 마이카

가후쿠


마음속엔 텅 빈 공동(空洞)이 아주 크게 나 있다. 네 살 된 딸이 죽으면서 생겨버린 공동은 아내로 인해 채워질 줄 알았지만 아내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조금씩 깊어지고 더 커져서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공동을 채울 수가 없어졌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나의 가슴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이었고, 나의 품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잔다는 걸 알지만 그걸 아내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아내가 나를 떠나가게 될까 봐, 그러면 내 속의 텅 빈 공동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잡아먹어 어둠만이 내 속을 채우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애써 꺼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상처를 받았지만 제대로 상처를 받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제대로 상처를 받았다면 아물어 흉터가 생기더라도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제대로 받지 않은 상처는 점점 곪고 곯아서 깊어지기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살아가는 수밖에. 가끔 우리끼리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내는 길밖에 없다.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없는 맛도 참고 견디며, 평화 따위 없더라도 살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상처를 받는 방법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거짓 없는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다. 그걸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 ost https://youtu.be/ez-Wkp2gj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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