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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

2장 1일째


44.

 오너의 브리핑을 듣는데 머리가 좀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마동은 무기력적인 사색을 브리핑 중에 해버렸다는 자책감에 관자를 지그시 눌렀다. 마동은 브리핑을 들으며 회의 중에 물을 몇 모금 들이켰다. 갈증이 있었다. 갈증이 생겼다는 건 수분이 이미 부족하다는 말이다.


 감기 기운이 감돌면 어린 느낌이라니.


 정말이지 여름 감기라는 건 귀찮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입안이 꺼끌꺼끌하고 목이 마르는 느낌 이외에도 기억의 왜곡이 불러들이는 사색에 자꾸 잠기었다. 그 사색이라는 공간은 마동이 그동안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생각해본 적 없는, 객관적이지 않았고 본질적으로 주체가 아닌 '주체아'적인 부분이라 마동 자신도 놀랐다. 이름 때문에 마동을 괴롭혔던, 마동에게 고통을 줬던 어린 시절의 아이들, 지나치며 마동에게 이유 없이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군대의 기억처럼 잠시 떠올라 구름처럼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곧, 그 사람들의 얼굴이 기이하게 다시 나타났다. 비닐봉지에 걸러서 보이는 얼굴처럼, 악의적인 모습이 잔뜩 담긴 얼굴은 고무풍선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땅에서 약간 공중 부유를 했다. 악의에 찬 얼굴은 이쪽으로 둥실둥실 떠올라 저쪽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한 발의 총성.


 총성과 함께 악마적인 얼굴이 총을 맞고 팍 터졌는데, 순간 피가 온 사방에 튀었고 터져버린 얼굴이 땅바닥에서 짓이겨졌다. 악의에 찬 얼굴에는 현 정부를 찬양하는 플래카드를 엑스자로 매고 있었고 어디선가 총성이 또 울리면 또 다른 충선의 얼굴에서 눈이 터지며 쓰러졌고, 이마에 구멍이 뚫려서 쓰러졌다. 전혀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총성이 울렸다. 보이지 않는 총열에서 울린 총성은 악의에 찬 얼굴을 부정하는 소리였다.


 총은 누가 쏘는 것일까.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쏘는 것일까.


 정부를 비판하는 자들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총알이 발사될 만한 곳은 없다. 둘러보고 있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총알이 총열을 지나 폭발하는 총소리가 들렸고 어김없이 일그러진 얼굴에서 피를 뿜으며 그 얼굴이 쓰러졌다. 결국 총열은 저들을 전부 겨냥하고 화약 냄새와 함께 모두 쏴 죽이고 마지막에 마동이 그 총을 들고 그들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정부 같은 곳을 부정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정부 편에 선 적도 없었다. 이건, 이건 마치.


 마동은 사색에서 왜 이런 정경이 나타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너의 브리핑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그동안 없었다. 어째서 마동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동안 그들의 존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상처 받지 않았고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 문득 마동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어떤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 총구의 눈은 마동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마치 ‘사상 범죄’ 같았다. 마동을 감시하는 총구의 눈. 빅브라더를 타도하기 위한 글을 일기장에 써 내려간 윈스턴에 마동 자신이 오버랩되었다. 단편적인 화면이 깜빡이며 마동이 사상범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가 나왔다.


 도대체 지금 시대에 사상 범죄라니.


 마동은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의시간에 이런 공상에 빠져있다는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하루 만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브리핑에 집중을 못하고 공상을 했다는 자괴감이 밀려들었고 머리가 지끈거렸으며 아프기까지 했다. 더불어 갈증이 심했다. 갈증이 난다는 건 탈수현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갈증이 심했다. 목이 매우 말랐다. 먹은 것이라곤 아침에 반 정도 먹은 계란이 들어간 잉글리시 머핀이 고작이었는데 이것마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적은 양의 정크 푸드가 몸속에서 소화가 되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있었고 거북하고 숨이 거칠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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