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일째
45.
회의가 끝나고 마동은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은 채 양손의 엄지로 관자를 힘 있게 눌렀다. 그때 최원해 부장이 마동 옆으로 왔다.
“저기 말이야, 오늘도 저녁에 조깅을 할 거지?”라고 최원해가 물었다. 마동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마동의 대답 속 어조에는 친밀감이나 관심은 배제되어있었다. 최원해와 가까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 타입의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런 인간이 최원해 부장이다. 길 잃은 개가 배가 고파서 주인이 아닌데도 빵을 얻어먹기 위해서 저자세로 다가오는 것처럼 최원해는 마동에게 무엇인가 부탁을 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마동이 보아온 최원해 부장은 마음먹고 시작한 부탁은 어떻게든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집요한 사람이었다.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안 되면 몇 날 며칠을 부탁하는 인간이다. 질기고 포기가 없다. 상대방에 싫어한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끈질기고 두려움도 없고 창피함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최원해 부장은 마동이 일하는 이 회사의 조직에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회사에 부적합한 사람이었다. 알 수 없는 색의 두꺼운 안경테 속의 눈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호했고 그 속에는 언제나 타인을 향한 감시가 서려 있었다.
49살의 최원해 부장은 비대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체형이 옆에서 보는 모습과 앞에서 보는 모습이 비슷했고 걸음걸이도 이상했다. 턱살이 많아서 목이 시작되는 경계선을 찾아볼 수 없었고 사무실의 여직원들에게 본인은 재미있다고 던지는 농담이었지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있었다. 머리는 곱슬머리라 상당히 고집이 있어 보였고, 군데군데 제초제를 뿌린 듯 머리가 한 움큼 빠져나가서 불안하고 황량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컴퓨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귀에 연필을 꽂고 다니면서 리모델링에 관한 부분은 직접 스케치를 하기도 했지만 작업의 능률적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보다 한 템포 늦어서 언제나 타인을 따라가는 입장에 있었다. 마동은 그동안 최원해가 클라이언트의 뇌파에서 망가진 꿈을 발췌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해 회사의 사이클을 습득하여 플랜에 투입되어 꿈의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더 뒤처지는 사람이 최원해였다.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최원해는 자신의 가족을 전부 몰고 와서 한 명분의 돈을 지불하고 뷔페를 즐겼다. 회식자리에서 일차가 끝이 나고 이차로 이어지는 자리에서는 빠지는 일은 없었지만 술값을 계산할 때가 되면 늘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은 최원해를 이해해 주었다. 아니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거나. 최원해는 늘 그런 식이라는 수사가 등에 붙어있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회사원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최원해 부장은 꿈을 리모델링하는 회사에 전혀 불필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회사 밖에서 일어나는 행사에서도 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타입이었지만 출근시간을 어긴 적은 없었다. 결근 한 번 하지 않았고 일찍 퇴근하는 일도 없었다. 여직원들에게 쓸데없는 농지거리를 건네기는 했지만 그 선이 확실하게 있었다. 때로는 성적인 발언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수위는 얕은 수면 위 같을 뿐, 더 깊게 내려가지는 않았다. 연필이나 볼펜을 귀에 꽂고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다니며 모든 직원들에게 간섭을 했는데, 매일 하는 최원해의 그 같은 행동은 직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회사에 반하는 직원들을 파악하고 그들의 언행을 교묘하게 수집하여 오너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칫 정보를 캐내려는 스파이나 타사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본의 아니게 회사의 정보를 빼내어 가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 개인의 몸만 빠져나가서 타사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정보를 같이 들고 가는 행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최원해 부장이 그런 애매한 임계점에 투입되어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빅브라더의 감시자 역할에 적격인 자가 최원해 부장이었다. 직원들의 행동, 직원들의 대화, 직원들이 남긴 메모, 직원들의 문자, 직원들이 회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최원해 부장만의 체재가 텔레스크린이 되어서 매시간 직원들을 감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