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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6

2장 1일째


46.

 직원들은 노출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최원해는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서 회사와 직원 사이에 다리를 슬쩍 걸쳐놓고 회사의 편에 서 있었다. 그 누구도 최원해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최원해 역시 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다. 타인으로 인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경우를 찾을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최원해는 다른 사람에 비해 마동은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었다. 고마동이라는 직원의 생각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과 말을 섞는 경우도 드물었다. 혹시라도 이야기하는 모습을 포착해서 들어보면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준이었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은 그동안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도 드물었고 시계추처럼 언제나 일정한 행동의 패턴으로 움직였다. 어떠한 리추얼을 지니고 움직이는지 몰라도 최원해가 보는 마동은 늘 비슷했다. 오너가 고마동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어떠한 결함이(회사에 반한다거나) 있어도 오너는 그 사실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고마동에게 전혀 세속적이고 몰락적인 부분을 포착해 낼 수가 없었다. 최원해 자신처럼 출근시간이 어긋나지 않았고 퇴근 후 저녁의 시간에는 매일매일 조깅을 즐긴다는 것뿐이었다. 회사에서 도맡은 일은 그 기한 내에 무슨 일이 있어도 깨끗하게 처리를 했으며 리스크가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대처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오너 역시 최원해에게 마동은 주의 깊게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정도였다. 인간이기에 분명 이중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게 최원해의 입장이었다. 고마동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할 뿐이며, 진실에 대해서 꾸며진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고 잘 꾸며진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두 견해가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면 모순되는 두 의견을 동시적으로 수렴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 년을 옆에서 지켜본바 고마동은 최원해가 생각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떠나, 어떤 인물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아주 규칙적인 생활의 반복을 하고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다르다는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이런 최원해를 직원들은 이 회사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최원해는 회사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번에는 또 뭘 부탁을 하려나.


 느릿하게 와서 마동의 얼굴 가까이 다가온 최원해는 아픈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고개를 돌려 최원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이 사람이 싫을까.


 “엇, 그런데 자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최원해는 연필을 귀에서 빼내서 연필의 끝으로 귀를 후볐다.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거 같아서요.” 마동은 책상의 컴퓨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최원해는 그런 마동을 아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은 ‘나는 모든 것을 다 안다’ 하는 능글맞은 늙은 사자의 눈빛을 띠며 마동 얼굴 가까이 바짝 다가왔다. 하루 중에 최원해의 어떤 행동은 마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최원해는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구두를 벗어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일을 했다. 벗어놓은 구두의 밑창은 안쪽으로 비스듬히 닳아 있었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구두를 신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면 밑창은 어김없이 안쪽으로 정교하게(마치 목공예를 하는 것처럼) 양쪽 모두 비슷한 각도로 닳아 있었다. 최원해는 걸음걸이가 바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뒤에서 보면 걸음걸이가 인간처럼 걷는 펭귄을 떠올리게 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최원해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일관된 디자인의 구두였다. 구두를 얼마 만에 구입하는지 몰라도 구두를 새로 구입해서 그다음 날 신고 나와도 어쩐지 구두의 굽은 안쪽으로 닳은 모습처럼 보였다. 그런 엇비슷한 구두를 지치지 않고 구입하여 신고 다녔다. 구두 굽은 어디를 봐도 푹신한 모양새라고는 찾을 수 없는 구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안쪽으로 닳아 있었다. 기능적으로 꽤 발달한 구두도 아니었다. 최원해는 그런 구두를 구입하여 사시사철 신고 다녔다. 하루의 반나절을 사무실에서 슬리퍼만 신고 있었지만 구두 굽은 생각보다 빨리 닳았고 그 닳은 모습이 최원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비스듬히 닳은 최원해의 구두를 보는 것으로 마동은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최원해라는 인간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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